환자 본인이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조력 존엄사’에 대해 우리 국민 82%가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13일 나왔다.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6일 국회에 발의한 ‘조력존엄사법’의 입법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은 결과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1~4일 국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조력존엄사 입법화에 찬성하는 의견은 82%였고, 그중 ‘매우 찬성한다’도 20%에 달했다. 반대 의견은 18%였고, 그중 ‘매우 반대한다’는 의견은 3%에 그쳤다. 대한의사협회 등이 이 법안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는 반면, 국민 여론은 찬성 쪽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것이다.
세대별로는 60세 이상 찬성 비율(86%)이 가장 높았다. 30대를 제외한 18~60세 모든 연령층에서 찬성 의견이 80%를 웃돌았다. 30대는 찬성 74% 대 반대 26%로 다른 연령층보다 찬성 비율이 다소 낮았다. 찬성 이유로는 ‘자기 결정권 보장’(25%)이 가장 높았다. 이어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23%), ‘가족 고통과 부담’(20%) 순이었다. 자기 결정권 보장은 18~29세(44%),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권리는 60세 이상(29%), 가족 고통과 부담은 40대(26%)에서 각각 높게 나타났다.
반면, 반대하는 이들은 ‘생명 존중’(34%)과 ‘악용·남용 위험’(27%), ‘자기 결정권 침해’(15%) 등을 이유로 꼽았다. 50대 이상은 생명 존중, 30대 이하는 악용·남용 위험을 가장 우려했다.
건강보험재정을 호스피스와 연명의료 확대, 광의의 웰다잉 지원에 투자하는 것에 대한 질문에는 국민 80%가 찬성했다. 품위 있고 고통 없는 생애 말기를 보장하기 위해 조력 존엄사와 관련 입법을 모두 긍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나타냈다. ‘광의의 웰다잉’이란 호스피스와 취약 계층 말기 환자의 사회 경제적 지원을 확대하고, 유산 기부, 마지막 소원 이루기, 정신적 유산 정리, 생전 장례식 등 남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가는 것을 뜻한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번 여론조사는 조력 존엄사 법안에 대한 첫 대국민 조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했다.
이처럼 국민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조력 존엄사 법안 논의 과정에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안규백 의원실은 다음 달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고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하지만 의료계는 이 법을 두고 ‘시기상조’라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의협은 지난 8일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부족한 상황에서 혼란만 초래할 수 있고, 합법적인 자살을 허용하는 결정을 내릴 위험도 높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생명 경시 풍조를 부추길 수 있고, 자살예방법과 상충되는 문제가 있다는 점 등이 반대하는 이유였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안락사와 의사 조력을 통해 스스로 삶을 마감하는 것은 모두 불법이다. 2018년부터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등 무의미한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것만 합법화됐을 뿐이다. 현재 발의된 조력 존엄사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실제 대상자가 되려면 복잡하고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말기 환자이면서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이 발생하고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보건복지부 장관 소속 ‘조력 존엄사 심사위원회’에 조력 존엄사 희망 의사와 자신 상태를 증빙할 수 있는 서류 등을 내야 한다. 심사위원회를 통과하더라도 1개월이 지난 시점에 본인이 ‘조력 존엄사를 희망한다’는 사실을 의사 2명 이상에게 표현해야 한다. 가족들 동의로도 가능한 연명 치료 중단과 달리, 조력 존엄사는 환자 본인 의사를 분명히 확인했을 때에만 가능하도록 해 악용·남용을 막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