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재유행 확산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기존 백신의 4차 접종 이외에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다. 일단 감염된 후 중증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는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인 먹는 치료제 처방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으로 나타났다. 25일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도입된 먹는 코로나 치료제 106만2968명분 중 28%인 29만7000여 명분만 사용돼 76만5071명분이 남아 있다. 화이자의 팍스로비드는 지난 1월 14일 국내 첫 투여 이후 21일 오후 6시 기준 27만2546명분만 쓰여 상당 부분 재고로 남아 있다.
먹는 코로나 치료제는 60세 이상이거나, 만 12세 이상 중 면역 저하자 또는 기저 질환이 있는 고위험군 환자가 코로나 확진 초기에 먹어야 한다. 그러나 일선 의료 현장, 특히 동네 병·의원에서는 여전히 처방받기 어렵다. 대표적 치료제인 팍스로비드의 경우 함께 쓰면 안 되는 병용 금기 약물이 28개에 달하고, 처방 후 의료진이 취해야 할 절차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처방 의사는 보건소와 심평원 등에 환자 정보 등을 보고해야 하고, 보건 의료 위기 대응 시스템을 통해 치료제 투약 확인서를 제출해야 한다.
60세 이상 고령층은 당뇨병 등 만성 질환을 동시에 여러 개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주로 대학 병원을 이용한다. 그런데 대학 병원에선 입원 환자가 아닌 통원하는 외래 환자에겐 팍스로비드 처방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항응고제 등 병용 금기 약물은 5일 정도 끊어도 큰일 나지 않는데 확진된 고위험군 환자가 팍스로비드 처방을 못 받은 채 재택 치료로 넘어가 투약 시기를 놓치고 결국 중환자가 돼 입원하는 사례를 왕왕 본다”면서 “고위험군의 경우 조기에 투여해 중증화를 막는 게 급선무인데 처방을 막아 놓으니 답답하다”고 했다.
다양한 코로나 변이 발생으로 기존 백신의 효과가 떨어지면서 치료제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기 고려대 약학과 교수는 “코로나는 인플루엔자보다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며 “백신에 대한 코로나 변이의 회피 능력이 비행기 수준이라면 치료제는 자전거 정도로 볼 수 있다”고 했다. 백신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에 침투할 때 달라붙는 돌기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치료제는 바이러스 세포 복제에 관여하는 효소를 억제시키기 때문에 코로나 대응 효과가 더 크다는 설명이다.
백신과 치료제의 사용량 차이도 변이에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는 “바이러스 입장에선 백신이 전 세계적으로 많이 쓰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꾸 변이를 일으키고 있지만 치료제는 상대적으로 적게 사용돼 백신만큼 대응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며 “언젠간 팍스로비드에 대항하는 변이도 일어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고위험군 위주의 치료제 처방은 중증화 예방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했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국제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에 발표된 ‘오미크론 하위 변이 BA.2.12.1, BA.4, BA.5에 대한 항체 및 항바이러스제 효과’ 연구에 따르면, 원조 오미크론인 BA.1이나 최근 국내에서 사실상 우세종이 된 BA.5의 경우 팍스로비드나 주사제인 렘데시비르를 투여하면 효과가 거의 비슷한 것으로 나왔다.
이날 국내에선 BA.2.75(일명 ‘켄타우로스’) 변이 확진자가 1명 추가로 확인돼 누적 4명이 됐다. 방역 당국에 따르면, 이번 확진자는 충북 거주 20대 외국인으로, 백신을 3차 접종까지 완료했다. 지난 13일 증상이 나타나 당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번 확진자는 국내 두 번째 BA.2.75 확진자의 지인으로, 두 번째 확진자가 입국했을 때 공항으로 마중 나간 후 귀가 때까지 동행한 것으로 파악돼 지역 내 감염이 이뤄진 첫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날 오후 9시까지 신규 확진자는 9만4213명으로, 자정까지 합하면 10만명 안팎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오후 9시 기준 신규 확진 규모는 일주일 전인 지난 18일 같은 시각 대비 1.34배 수준으로 1주 단위로 확진자 수가 2배로 늘어나는 ‘더블링’ 현상이 둔화된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