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변이 BA.5가 주도한 코로나 재유행이 정점을 지나 꺾이고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국내 코로나 확산세 역시 마찬가지. 뒤이어 나타난 BA.2.75, 이른바 ‘켄타로우스 변이’도 예상보다 파괴력이 낮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이제 서서히 코로나가 ‘팬데믹(pandemic·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화)’으로 전환할 것이란 전망도 힘을 얻고 있다. 일본은 확진자 수 집계를 중단하고 입원·중증 위험 환자 규모와 사망자만 파악하는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 1일부터 코로나 환자 일일 집계를 중단하고 주간 단위로 발표하기로 했다.
2일 글로벌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코로나 하루 신규 감염자(7일 평균 기준)는 6월 이후 꾸준히 증가하면서 지난달 23일 110만명까지 상승했지만 그 뒤로는 감소세가 나타나고 있다. 이달 들어선 100만명 수준으로 기세가 가라앉고 있다. 코로나 재유행이 가장 먼저 시작된 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하루 확진자가 7월 초 10만명을 돌파했지만, 8월 초 절반으로 감소한 상태. 미국 역시 하루 10만명 안팎 확진자가 나오긴 하지만 지난 1월 오미크론 정점기 하루 80만명대씩 쏟아지던 시절과 비교하면 체감 확산세는 한결 약하다.
이들보다 한발 늦게 코로나 재유행이 시작된 한국과 일본도 하루 확진자 감소세가 두드러지진 않지만 증가 속도는 둔화되고 있다. 하루 20만명 확진자를 기록하고 있는 일본은 수도 도쿄에서 지난 1~2일 이틀 연속 하루 확진자 수가 지난주 대비 감소했다. 한국 역시 3일 11만9922명을 기록했지만, 증가 속도는 완만해졌다.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확진자가 두 배씩 증가하는 현상은 주춤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역 전문가들 사이에선 BA.5가 주도하는 코로나 6차 재유행 규모가 예상보다 빠르게 정점을 찍고 안정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정재훈 가천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이번 주나 다음 주 사이 재유행 정점이 지나갈 것으로 본다”며 “전체 유행 규모 역시 당초 예상의 절반 이하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전문가들이 BA.5 재유행 정점 시기와 규모를 8월 중순~말, 하루 확진자 규모 25만명 안팎으로 예상했는데 이를 밑도는 수준이다. 이미 매주 확진자 규모가 2배로 불어나는 ‘더블링’ 현상이 멎고, 감염재생산지수(확진자 1명이 감염시키는 감염자 숫자)는 2주 연속 감소했다. 일본에서도 의료 전문가들은 “추이를 신중하게 지켜봐야 하지만 도쿄 확진자 증가 속도가 완만해진 것은 확실하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난 3~4월 오미크론 변이 대유행 당시 감염으로 인한 항체가 유지되고 있는 데다, 60세 이상 4차 예방 백신 접종률이 40%를 넘는 등 고위험군 접종이 빠르게 진행된 영향이 작용했다고 본다. 재감염 우려도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7월 감염자의 97%가 감염 이력이 없는 최초 감염자였다.
BA.5의 후속 변이인 이른바 켄타로우스 변이(BA.2.75) 파괴력도 당초 예상보다 약하다. 김탁 순천향대 감염내과 교수는 “처음 우려와 달리 켄타로우스 변이가 BA.5보다 면역 회피 능력이 뛰어나지 않은 것 같다”며 “켄타로우스 변이에 의한 쌍봉형 유행(확진자가 단기간에 두 번 폭증하는 것)은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11~12월 겨울철 대규모 재유행이 오기 전까지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10만명 수준에서 오르내리는 이른바 고원(高原)형 확산이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일률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강화 조치를 도입하지 않고, 감염 가능성이 높은 일부 지역에 대한 ‘표적 방역’ 방침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대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4차 예방 백신 접종, 중환자 병상 이용률 관리, 지역사회 숨은 감염자 발굴 등에 힘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