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등 중부지방을 중심으로 많은 비가 내린 9일 서울 중구 서울역 택시 정류장에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선 채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비 내리는 새벽,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던 강모(69)씨가 30분 넘게 택시를 못 잡아 진땀을 빼고 있었다. 빈 차가 지나갈 때마다 손을 들고 세워보려 했지만, 하나같이 초록색 ‘예약’ 표시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그를 지나쳐간 택시들은 대부분 수십미터 떨어져 있던 젊은 승객들 앞에 섰다.

강씨는 “요즘 다들 스마트폰으로 택시를 부른다고 해서 나도 택시 앱을 깔긴 했는데 사용법을 몰라서 써본 적은 없다”며 “지나가는 젊은이들한테 매번 부탁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너무 답답하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택시 숫자가 크게 줄어든 가운데 택시 앱을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이 ‘택시 대란 최대 피해자’가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연구원의 ‘2021년 택시서비스 시민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시 법인택시 운전자 중 91.4%가 카카오T 등 택시 앱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승객들의 택시 이용 방식을 보면, 20대와 30대의 경우 ‘택시 앱으로 택시를 이용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72.8%에 달한 반면 60대에서는 20·30대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34.8%로 나타났다.

‘거리에서 택시를 잡는다’고 응답한 비율은 20대와 30대가 각각 26.2%, 25.7%에 그쳤지만, 60대는 64.6%에 달했다. 60대 3명 중 2명은 앱을 쓰지 않고 거리에서 빈 택시를 기다린다는 얘기다. 40대는 앱 이용 비율(60.1%)이 거리 택시 이용(38.9%)보다 높았지만, 50대도 60대처럼 거리 택시 이용 비율(55.2%)이 앱 이용(43.8%)보다 높았다.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코로나 사태 이후 택시 수 감소로 길에서 빈 택시를 잡는 것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다. 코로나 유행 직전인 2019년 말 10만 명이 넘던 전국 법인택시 운전자 수는 올해 5월 기준 7만 명 수준까지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사회적 거리두기까지 전면 해제돼 택시 수요는 급증했는데, 택시 운전자 대부분이 앱으로 예약을 받으면서 앱 사용이 서툰 60대 이상이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것이다. 택시 운전자 입장에선 앱을 이용하면 미리 승객의 행선지를 알고 승객을 택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주부 김모(62)씨는 “이제 우리처럼 앱 못 쓰면 택시도 못 타는 시대가 됐다”면서 “앱 이용법이라도 제대로 안내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실제 60대 이상 중 상당수는 택시 앱에서 자신의 위치를 설정하고 목적지를 입력하는 기본 앱 실행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카오T를 운영하는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앱은 이용자들의 편의를 최대한 고려해 개편해왔다”며 “지금은 앱에서 ‘대형 택시(벤티) 예약 기능’을 활용하면 어르신이 원하는 시간·장소에서 택시를 이용할 수 있도록 멀리 떨어져있는 자녀·지인 등 제3자가 차량을 대신 예약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예약 가능한 차량은 요금이 비싼 대형 택시로 제한되고, 예약 시점 기준으로 30분 이후부터 이용이 가능하다.

서울 시내에서 주행 중인 카카오T 택시 모습. /뉴스1

전문가들은 사태 해법으로 고령층을 대상으로 하는 스마트폰 사용 교육 강화, 고령층을 배려한 앱 기능 추가 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현재 서울시는 서울시민청 스마트서울전시관에서 중장년층 대상 디지털기기 활용 교육을 시행 중이지만, 컴퓨터 활용 교육 비중이 스마트폰 교육 비중의 3배에 달하는 등 아직 스마트폰 이용 교육 프로그램은 부족한 실정이다.

허준수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고령층은 여전히 스마트폰을 통화 용도 위주로 사용하고 있는데, 당장 실생활에 필요한 앱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맞춤형 실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와 동시에 앱 개발사는 음성을 통한 택시 호출 기능 등을 도입하고, 지자체는 노인 맞춤형 특별 교통 서비스 등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9일 서울역 택시승강장에서 시민들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