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 과목이 의사들에게 기피 대상이 된 가운데 소위 ‘피·안·성·정’(피부과·안과·성형외과·정형외과) 등 분야는 3년 연속 전공의 충원율이 100%에 육박하는 상한가를 기록 중이다. 돈 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좋은 일부 과목에서 의사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1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피부과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인턴 및 레지던트 확보율이 100%다. 안과와 성형외과는 3년간 전공의 확보율이 100%→99%→100%였고, 정형외과는 100%→100%→99%였다. 이어 정신건강의학과·이비인후과·재활의학과 등도 지난 3년간 전공의를 99% 충원했다. 올 들어 소아청소년과·흉부외과 등 과목의 전공의 충원율이 20~30%대까지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의사 인력 쏠림 현상이 심각한 것이다. 신경외과·마취통증의학과 등은 표면적인 전공의 충원율은 높게 나타나지만,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은 척추나 통증 등에 인력이 쏠리는 반면 고난도의 뇌혈관이나 마취 분야는 만성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일러스트=박상훈

본지가 인터뷰한 의료계 전문가 20명은 이구동성으로 “인기 과일수록 수술이 없으니 소송당할 위험이 없고, 365일 대기 당직이 없고, 개원 기회가 많아 돈을 잘 벌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라며 “젊은 세대 의사들에게 더 이상 사명감만으로 버티라고 강요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특정 분야로의 의사 쏠림은 대학병원뿐 아니라 개원가에서도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예컨대 신경외과나 혈액종양내과 등 필수 의료 분야에서 5년 이상 고난도 수련을 마치고도 당초 진로를 포기하고 전혀 관계없는 분야에서 의사 생활에 나서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2020 전국의사조사’에 따르면, 흉부외과 전문의의 20.8%, 산부인과의 15.4%, 외과의 15.3% 등이 “전공 외 다른 과 환자를 주로 진료하고 있다”고 답했다. 의료계 관계자는 “필수 의료 분야 전문의 자격 보유자가 동네 피부과 의원에 취업해 첫 석 달 치 월급 일부를 교육료로 떼이는 ‘인턴’ 생활을 하면서 레이저 시술 기기 다루는 법을 배우는 등의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전했다.

전공과 무관하게 인기 분야로 의사가 몰리면서 과도한 비급여 진료 권유 등 소비자 피해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 강남의 한 성형외과·피부과 의원에서 레이저 시술을 받은 백모(53)씨는 “피부과 전문의가 치료해줬다고 생각했지만 부작용이 나타나 알아보니 원장은 가정의학 전문의, 시술 의사는 전공 확인 자체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반대로 필수 의료 분야 인력 부족은 의료 분야 종사자에게까지 피해를 주고 있다. 아산병원 간호사 사망 사태에서도 드러났던 문제점이다. 소화기내과 전문의 박모(41)씨는 “작년 7월 뇌출혈 판정을 받았지만 코로나 상황까지 겹쳐 올 3월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에서 정식으로 수술받기까지 8개월을 기다려야 했다”고 말했다. 박씨는 “수술을 담당한 신경외과 전문의가 밤마다 홀로 회진을 돌고, 휴일에도 응급 수술 하느라 집에 못 가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특히 야간 응급 상황에서 피해가 더 커질 수 있어 문제다. 부산 해안가의 고급 아파트가 몰려 있는 A구에 사는 최모(38)씨는 최근 7세 아이가 한밤중에 아파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달려갔지만 10분 만에 발길을 돌려야 했다. 최씨는 “병원으로부터 ‘근무 중인 소아청소년 전문의가 없어서 다른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이 정도로 의사가 부족한지 몰랐다”고 했다. 또 대한소아감염학회에 따르면 전남·울산·광주·경북은 소아감염 전문의가 단 1명도 없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의료 자원의 수도권 쏠림도 이런 상황을 악화시킨다. 외과계에서는 “일부 도서 지역은 심장 수술이 가능한 병원들이 일부 있지만 비상 상황 시 접근성이 떨어지는 실정”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수도권의 대형 종합병원에는 항암 치료 등에 인파가 몰리면서 ‘3분 진료’와 같은 병폐가 고착되고 있다. 필수 의료 분야의 과중한 업무로 인해 의사들이 갈수록 필수 의료 분야를 더 기피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