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내 중입자치료센터. 지하 30m 깊이 지하 층에 직경 20m의 ‘싱크로트론(가속기)’ 기계가 원형 트랙 형태로 설치돼 가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거대한 가속기는 국내 처음으로 도입돼 내년 3월 운영을 앞두고 있는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중입자 치료기의 핵심 설비다. 여기서 탄소 원자를 넣고 가속해 빛의 속도의 70% 수준까지 속도를 올려준 뒤, 연결된 치료실 3곳으로 보내 암환자에게 쏘아 암세포를 정밀 타격하게 된다.
중입자 치료는 방사선 치료법 중 가장 최신 기술이다. 중입자는 기존 암 치료에 쓰이고 있는 X선이나 양성자에 비해 무거워 암세포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어 치료 효과가 우수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 목표물인 암세포에 도달한 뒤에야 에너지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다른 정상 세포에는 손상을 거의 남기지 않는다. 부작용과 후유증 위험이 기존 치료에 비해 적은 것이다. 한 번 치료에 2분 정도가 걸리고 통증도 거의 없어 치료 후 바로 귀가가 가능한데, 치료 횟수도 기존 방사선 치료의 절반 수준인 평균 12회 정도라고 한다.
연세의료원 관계자는 “앞으로 시험 가동과 조정 작업 등을 거쳐 이르면 내년 3월 환자 대상으로 중입자 치료가 시작될 것”이라며 “해외 원정 치료를 받으려면 비용이 1억~2억원에 달하는 점을 생각하면 국내 난치성 암환자들에게 새 희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적으로 일본과 유럽 등에 중입자 치료 기관이 10여곳 운영되고 있지만, 국내 도입은 연세의료원이 처음이다. 도입 비용과 치료 비용이 워낙 고가이다보니 미국도 우리보다 늦은 2026년쯤 처음 중입자 치료가 도입될 전망이다. 다만 국내 중입자 치료비 수준이 어느 정도가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암세포가 한 곳에 일정한 형태로 모여있는 고형암이라면 모두 중입자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특히 안구나 고관절 주변 등 수술로 제거하기 어려운 부위의 암, 기존 방사선 치료나 항암제가 잘 듣지 않는 생존력이 강한 암 치료에 유용하게 쓰일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윤동섭 연세의료원장은 이날 취임 2주년 기자 간담회에서 “중입자 치료는 5년 생존율이 30% 이하여서 3대 난치암으로 꼽히는 췌장암, 폐암, 간암에서 생존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며 “골·연부조직 육종, 척삭종, 악성 흑색종 등의 희귀암의 치료는 물론 전립선암 치료 등에서도 널리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세의료원 중입자치료센터에서는 고정형 중입자 치료기 1대와 360도 회전이 가능해 여러 각도에서 조사(照射)할 수 있는 회전형 2대 등 총 3대를 운영한다. 내년 3월 고정형 치료기를 시작으로 순차적으로 회전형 치료기도 가동해 3대가 모두 가동되면 하루에 환자 50명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