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이태원 생존자입니다”로 시작되는 글이 올라왔다. “구조돼 살았지만, 끼어 있을 당시 압박감이 어느 정도 강했는지 알려드리기 위해 다리 사진만 올려보겠다”며 하반신 전체에 뻘겋게 피멍이 든 사진을 공개했다. 흉부외과 전문의 서동주 다리핏의원 원장은 “장시간 몸이 끼어 복부를 강하게 압박하게 되면 다리 쪽 혈류가 심장 쪽으로 올라가지 못해 정체되고, 주변 혈관이 터지면서 다리에 멍이 생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서 간신히 탈출해 나온 생존자들은 크고 작은 신체적·정신적 후유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이상이 느껴진다면 서둘러 치료에 나서는 게 좋다.

◇압력에서 벗어난 후유증 조심해야

사고나 재해로 신체에 강한 압력을 받는 상황이 수십 분 이상 계속될 경우, 압력원(源)을 갑자기 제거했을 때 ‘압박증후군(Crush Syndrome)’이 발생한다. 깔려 있을 때 혈액 순환 장애가 생기면서 죽은 세포에서 칼륨·미오글로빈 등이 나오는데 깔린 상태에서는 혈액 순환이 늦춰져 이들이 바로 신체로 퍼지지 않는다. 그러다 갑자기 무거운 물체를 제거하면 이들이 온몸으로 향하면서 혈중 농도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고 위급한 상황이 될 수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서 매몰됐다 구조된 사람 상당수에게 관찰된 증상이다.

”당시 압박 이정도”… 온 다리에 피멍 든 생존자 - 지난달 31일 발생한 서울 이태원 사고 당시 살아남았다는 한 네티즌이 공개한 다리 사진. 인파에 몸이 강하게 압박되며 다리 전체에 피멍이 들었다. /보배드림

압박증후군으로 발생하는 대표적인 질환은 횡문근융해증. 외상이나 무리한 운동, 약물 오·남용 등으로 손상을 입은 근육이 영양분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 괴사가 일어나고, 이로 인해 생긴 독성 물질이 순환계에 침투해 전신에 악영향을 미친다. 독성 물질이 모세혈관이 많은 콩팥으로 흘러가게 되면, 콩팥 기능이 마비되면서 신부전증 등이 생기고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박수현 차의과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이태원 참사 생존자들에게서 이 질환이 다수 관찰되고 있다”며 “소변이 콜라 색으로 변하거나 근육 통증과 무력감이 심해지고 배뇨 장애나 부종이 발생하면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압박증후군의 또 다른 질환은 구획증후군(Compartment Syndrome)이다. 주로 골절이나 근육파열 등 외상이 동반되면서 근육 일정 부위(구획) 내 압력이 증가하면 해당 부위 말단부의 혈액 공급이 차단돼 4~8시간 안에 구획 내 근육이 괴사하는 질환을 말한다. 맥박이 뛰지 않거나 몸이 창백해지고 감각이 없어지면 바로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한다. 박 교수는 “횡문근융해증이나 구획증후군 등 신체 질환은 압사 현장에서 몸이 끼어있다 빠져나온 이들, 심폐소생술을 교대 없이 1시간 넘게 시행하면서 심한 근육통이 발생한 이들, 병원을 전전하며 오래 돌아다닌 부상자들에게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당시 현장이 혼란해 신체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한 채 귀가한 생존자들이 많기 때문에 복부 등 보이지 않는 곳에 외상이 발생했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지금은 별문제 없어도 시간이 지나고 (머리나 배 등에) 갑자기 출혈이나 멍이 생기는 경우를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면서 “병원에 가서 추가 진료를 받아보기를 권한다”고 조언했다.

◇그날의 악몽 자꾸 떠오른다면

신체적 이상은 없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도 조심해야 한다. 생존자들 중 “비탈 끝 부분에 팔다리가 엉켜 얼굴이 파래진 채 층층이 쌓여 있던 사람들 모습이 눈만 감으면 지옥도처럼 펼쳐진다” “배가 부풀어 오른 채 도로 위에 널브러진 수십 명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형민 대한응급의사회장은 “응급의학 전문의들조차 이번 참사로 인한 정신적 충격이 크다”며 “현장에 있던 생존자나 구조자들 모두 심리적인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뒤 △자주 놀라거나 △악몽 등으로 사고 순간이 다시 떠오르고 △사소한 일에 화가 나거나 △집중력 저하 △수면 장애 등이 나타나면 병원을 찾는 게 좋다. 신용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런 증상들이 한 달 이상 지속되면 PTSD일 확률이 높으니 반드시 병원에 가야 한다”며 “증상이 심해지면 극심한 우울증이 찾아오거나 알코올 의존증에 빠져 일상생활이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