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련형 전자담배를 피우는 직장인 이모(44)씨는 “매번 내가 마시는 타르와 니코틴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담긴 담뱃갑을 봐도, 담배 회사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봐도 이런 정보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2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와 담배 업계에 따르면, 필립모리스·KT&G·BAT(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의 궐련형 전자담배용 담배 스틱은 1개비당 0.5㎎·0.3㎎·0.1㎎가량의 니코틴을 함유하고 있다. 이는 불을 붙여서 피우는 궐련의 니코틴 함유량(1개비당 0.01~0.7㎎)과 비슷한 수준이다. 궐련형 전자담배의 타르 함유량도 4.8~9.3㎎으로 궐련(0.1~8.0㎎)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들은 막연히 전통 궐련보다는 타르 등을 덜 흡입하고 있을 것으로 믿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담배 회사들은 이런 정부의 시험 결과를 인정하지 않거나 언급조차 꺼린다. “대외비” “영업 비밀”이라며 담배의 기본 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니코틴·타르 정보를 숨긴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처음 출시된 2017년 이후 5년째 이 같은 규제 사각지대는 계속 유지되고 있다.
반면, 궐련과 액상형 전자담배는 니코틴 등 함량을 담뱃갑이나 기기 겉면에 표시하고 있다. 담배사업법에 따라 ‘연기’(궐련)와 ‘액체’(액상형 전자담배) 형태의 담배는 반드시 표기해야 한다. 하지만 ‘증기’ 형태로 흡입하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해선 별도 규제가 없다. 담배 회사들에서는 “궐련형 전자담배를 통해 흡입하는 건 연기가 아니라 에어로졸(증기)”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궐련형 전자담배 등 모든 담배 제품에 대해 담배 성분과 배출물을 공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료계에서도 “국민이 궐련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알 권리가 있다”고 했다. 반면 담배사업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는 ‘궐련형 전자담배의 니코틴 등 성분 함량 측정법이 국제적으로 표준화돼 있지 않다’면서 추진에 어려움이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공인된 측정법이 없지 않다. 식약처가 지난 2018년 국제적으로 공인된 ISO(국제표준화기구)와 HC(Health Canada)의 두 궐련 분석 방식을 통해 대표적 궐련형 전자담배 3종의 니코틴·타르 함량을 측정해 발표했다. 일본·중국·독일 정부 등의 측정법을 따른 것이다. 그러자 담배 회사가 식약처를 상대로 “유해성 분석 세부 내용을 공개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의료계에서는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정부가 의지를 갖고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 과제로 “(니코틴·타르 외에도) 담배 유해 성분을 평가, 공개하겠다”며 한층 강한 입장을 발표한 적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최혜영·양경숙·김수흥 의원 등도 담배 회사가 스스로 담배 성분과 배출물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면서, 검사·정보 공개를 의무화하는 법안들을 발의했다.
담배 회사들은 “(단독 사용 시) 궐련형 전자담배는 궐련에 비해 유해성이 덜하다”고 주장하는 반면, 세계보건기구(WHO)는 “가열담배(궐련형 전자담배)는 암을 유발하는 독성 물질을 배출하며, 궐련보다 덜 해롭다는 증거가 없다”고 했다. 궐련형 전자담배 흡연자는 궐련 흡연자에 비해 니코틴 흡입 수준이 비슷하거나 더 많은 것으로 판명 난 바 있다. 2019년 질병관리청이 흡연자 832명을 대상으로 소변 검사를 해보니,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체내 니코틴 대사 물질(코티닌) 농도가 765.5ng/mL(밀리리터당 나노그램)으로 궐련 흡연자(729.5ng/mL)보다 높았다. 궐련과 액상형 전자담배를 이중으로 사용하거나(886.2ng/mL), 궐련형 전자담배까지 삼중 사용하는 경우(916.7ng/mL) 흡입량은 더 많았다.
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80%가량은 궐련과 액상형 전자담배를 섞어서 사용하는 이중·삼중 사용자로 나타났다.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의 85%가 중복 사용자라는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궐련형 전자담배가 궐련을 포함한 모든 담배를 끊기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