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틴을 섞은 특수 용액 증기를 마시는 액상형 전자담배는 ‘건강에 덜 나쁘다’는 인식이 있다. 담배에 불을 붙이거나 가열하는 궐련·궐련형 전자담배보다 낫다는 주장이다. 일각에선 ‘금연 보조제’라고까지 한다. 현재 인터넷과 오프라인에 수백종의 액상 제품이 범람해 청소년층의 구매를 막기 힘든 수준까지 갔다. ‘향이 난다’ ‘포장이 예쁘다’ 등 이유로 젊은 여성층에도 확산 중이다.

그런데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자 가운데 80%가량은 6개월 이내에 궐련이나 궐련형 전자담배 등 다른 담배 제품으로 쉽게 옮겨간다. 2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보건 당국 설문조사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만 사용 중’이라고 답한 43명을 5~6개월 뒤 다시 조사해봤더니, 이 가운데 34명(79.1%)은 궐련 또는 궐련형 전자담배로 전환하거나 중복 사용하게 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 중 9명(20.9%)만이 액상형 전자담배 단독 사용을 이어가고 있었다. 같은 조사 기간 궐련형 전자담배만 사용하던 121명도 64.5%(78명)가 궐련과 혼합 사용 등으로 바뀌었다. 전자담배만 사용하겠다고 다짐하더라도 쉽지가 않다는 뜻이다.

인터넷에는 청소년들이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자담배를 대리 구매하고, 중고 거래나 해외 직구로 구했다는 경험담이 넘친다. 전자담배의 은어를 사용해 거래하는 식이다. 청소년보호법에 따라, 청소년에게 전자담배를 파는 건 위법이지만 단속이 불가능한 규모로 범람 중이라는 지적이다. 오프라인 전자담배 무인 판매점에서도 신분증 스캔을 하지만 실제 얼굴과 맞는지 확인하는 절차가 없다.

현재 포털 사이트 쇼핑몰에서 ‘전자담배 액상’을 검색하면 3만건 이상의 판매 페이지가 뜬다. 코로나 와중에 수도권의 대형 전시장에서 ‘전자담배 박람회’도 열렸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담배사업법에 따라 연초의 잎이 아닌 줄기·뿌리나 합성 니코틴으로 만들면 광고 금지나 경고 그림 부착 등 기본적인 규제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법 개정을 통해 액상형 전자담배도 동일하게 규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담배 회사들이 직접 성분명을 공개하고 위해성이 없음을 입증토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식품과 의약품도 함유 성분과 기초적인 제조 방식은 표기하며, ‘불량 식품’ 등을 당국이 적발해 처벌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습기 사태’에서처럼 안전성이 규명되지 않은 각종 첨가물이 증기를 통해 폐에 들어갔을 때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2019년 미국에서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폐 손상으로 68명이 사망하고 2800여 명이 질환을 겪은 바 있다. 최근 해외를 중심으로 전자담배 기기로 마약을 피우는 사례도 나왔다. 의료계의 여러 연구 결과가 “액상형 전자담배의 증기가 폐 세포 손상을 유발하고, 호흡기 감염 등 각종 질환을 늘린다”고 지적한다.

‘액상 전자담배는 금연 보조제’라는 일부 주장에 대해 복지부 관계자는 “니코틴 중독의 해악을 간과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자담배는 궐련과 동시 사용하는 일이 잦다는 점도 문제다. “금연을 늦추기만 할 뿐, 결과적으로 암 등 발병률은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 비흡연자가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경우 1년 후 궐련 흡연자가 될 확률이 8.3배 늘었다. 전자담배가 담배에 입문하는 ‘통로’라는 뜻이다. 질병관리청이 최근 발간한 ‘담배 폐해 통합 보고서’는 “니코틴 중독은 내성·금단·갈망을 유발하고 뇌를 변형시킨다”며 “개인 의지만으로 금연에 성공하는 흡연자 비율은 매우 낮다”고 지적했다. 복지부는 “효과가 입증된 보건소 금연 클리닉, 금연 상담 전화, 지역 금연지원센터와 병의원 등을 찾아 금연해달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