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2025년부터 매년 0.5%포인트씩 높여 12년 뒤인 2036년 15%까지 올리는 걸 목표로 하는 국민연금 개혁안을 내놓았다. 동시에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현행 62세·2033년까지 65세로 상향)를 5년마다 한 살씩 더 올려 2048년 만 68세까지 높이자고 제안했다. 쉽게 말해 ‘더 많이 내고 더 늦게 받자’는 내용이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8일 오후 국민연금공단 서울남부지역본부에서 열린 국민연금 전문가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국민연금연구원 유호선 연구위원은 8일 보건복지부와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공동 주최한 전문가 포럼에서 “(현행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15%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면 (문재인 정부) 4차 재정 계산에서 2057년으로 예상된 기금 소진 시점을 최대 2073년까지 16년 늦출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3년 뒤인 2025년부터 보험료율을 12년간 매년 0.5%포인트씩 올리는 방안이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 최대 적립 기금은 기존 1778조원에서 3390조원으로 2배가량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국민연금 수지가 적자로 돌아서는 시점도 기존 2042년에서 2056년으로 14년 늦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수용 가능한 보험료율의 상한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한 것”이라며 “재정 안정화를 위한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방안이 실현될 경우 급여에서 비과세를 제외한 ‘기준소득월액’이 500만원인 직장인이 현재는 22만5000원(4.5%)을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지만, 연금 개혁 종료 시점에는 37만5000원(7.5%)으로 납부액이 15만원 오르게 된다.

이런 구상이 국회를 통과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방치됐던 연금 부실 해결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정부 측은 국민연금 개혁과 동시에 정년 연장 실현을 위한 노동 개혁에 착수할 것도 공개적으로 제안했다.

이 방안 외에 매년 0.2%포인트씩 30년에 걸쳐서 보험료율을 미세하게 올려가는 방안과, 매 3년이나 5년마다 1%포인트씩 계단식으로 올려가는 방안까지 총 4개 시나리오가 함께 발표됐다. 이런 장기 시나리오나 계단식 인상 시나리오는 기금 소진 시점을 늦추는 효과가 10~15년 정도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예컨대 0.2%포인트씩 30년에 걸쳐 인상하는 방안은 기금 소진 시점이 2067년으로 10년 연장되는 데 그친다. 이 시나리오는 최대 적립 기금도 2050년 2373조원으로, 0.5%포인트씩 12년간 인상하는 방안에서 제시된 최대 적립 기금(3390조원)에 비해 1000조원가량 낮아져 개혁의 효과가 떨어진다.

자료=국민연금연구원 그래픽=김현국

정부 관계자는 “이번 분석 시나리오는 내년 초 발표될 5차 국민연금 재정 추계 등을 통해서 보다 정교화될 것”이라며 “오늘 포럼을 계기로 국민연금 개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연금 개혁 방안에 대해 ‘정부는 단일 개혁안을 제시하는 방법보다는 국회 등을 통해 연금 개혁 논의를 촉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국회 연금개혁특위가 출범한 가운데, 정부가 국책연구기관이 발표하는 형식을 통해 연금 개혁에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국민연금연구원은 연금 수급 연령을 2048년 68세까지 5년마다 1세씩 더 늦추자는 방안도 제안했다. 이와 연계해 국민연금을 최대한 납부할 수 있는 연금 가입 연령도 현행 60세 미만에서 67세로 상향하는 방안을 함께 제시했다. 이 방안을 통해서는 기금 소진 시점을 2년 정도 늦출 수 있다고 내다봤다. 연구원은 “2050년에 유럽연합(EU) 주요 12국 평균 연금 수급 연령이 약 68세인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연금 보험료율 인상을 통한 효과(최대 16년)에 수급 시점 조정(2년)을 더하면 최대 18년간 기금 소진을 늦출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울러 해외 사례를 참고해 갈수록 연금 지급 부담이 늘어나는 데 따라 지급액 등을 법적으로 연계하는 자동 조정 장치 등 보완 장치를 추가할 경우 기금 소진은 최대 20년까지도 늦춰질 전망이다.

이런 방안에 대해 강성호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 발표안 가운데) 보험료율을 매년 0.5%포인트씩 단계적으로 15%로 올리는 방안에 동의한다”며 “보험료율 인상과 수급 개시 연령을 늦추는 것 모두 재정 안정화에 도움이 되겠지만 (개혁 과정에서) 반발이 클 수 있다”고 했다.

반면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료율 인상은 향후 10년 안에는 마무리해야 최소한 재정 안정이 가능해진다”며 “(복수의 시나리오를 통해) 수십 년에 걸쳐서 올린다든지, 3년이나 5년마다 한 번씩 올리자는 건 정부와 정치권이 저출산 고령화 위기에서 후세대에게 ‘연금 폭탄’을 던지고 시간을 벌어보겠다는 얘기에 불과하다”고 했다.

앞서 문재인 정부에서도 총 4개의 국민연금 개편안을 제안했다가 연금 개혁이 좌초된 바 있다. 2018년 제시됐던 문 정부 개혁안은 보험료율을 그대로 두고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방안과 보험료율을 12% 또는 13%로 인상하는 방안 등 총 4가지 안이었다.

이날 포럼에서 제시된 안에는 현행 유지가 없는 대신 4가지 모두 2025년부터 보험료율 인상을 시작하며 인상 폭과 기간에만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개혁안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연금 재정 추계 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연금 전문가는 “단계적으로 15% 정도까지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동시에 수급 연령을 늦추는 것은 (연금 개혁을 위해서)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이날 국민연금 개혁을 위한 정년 연장과 노동시장 개혁 논의도 공개 제안했다. 국민연금과 노동시장의 동시 개혁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이태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은 “한국의 주된 일자리 퇴직 연령은 50세 또는 55세 내외로 법적 정년인 60세보다 낮고, 성·학력·업종·직무 등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면서 단순히 법적 정년 연장에 그쳐서는 안 되며, 실제 은퇴 연령을 늦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의 임금 체계와 고용 구조를 유지하면서 정년을 연장하면 기업 부담이 급증해 고령 노동력 활용에 장애가 될 수 있다”며 “고용 형태와 임금을 유연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연금개혁은 법률 개정이 뒷받침돼야 하므로 국회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금개혁특위 소속 민주당 김성주 의원은 “지금 당장 몇 프로 더 내고, 얼마나 받자고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민들 거부감이 더 커질 수 있다”며 “시기적으로 빨리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국민들 의견 수렴이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