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중앙 공공 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이 현재 만 60세인 이 병원 의사들의 정년 연장을 추진한다. 정년이 65세인 민간 병원에 비해 정년을 비롯한 각종 처우가 낮아 필요한 의사 인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16일 정부와 의료업계 등에 따르면,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달 29일 열린 이사회에서 다음 이사회 때 의사 인력 확보를 위한 의사직 정년 연장 건을 상정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정년은 민간 병원 수준(65세)까지 연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사회에서 정년 연장이 의결되면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실무 협의를 거쳐야 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중앙의료원에는 의사 외에도 다른 업무를 보는 직원들 간 형평성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이 있어서 조금 더 논의는 필요해 보인다”면서도 “이사회에서 의결되면 정부가 딱히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중앙의료원 의사 결원율 20% 육박
공공 병원은 사회·경제적 취약계층을 위한 의료 제공이나 의료기관 접근성이 낮은 지역에서 의료를 제공한다. 전염병 및 재난 대비 의료기관 역할도 수행한다. 이렇게 공적(公的) 성격이 강해 민간 병원에 비해 수익성 문제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공공 병원 비율(2020년 기준)은 전체 의료기관의 5.4% 수준으로 OECD 국가 평균(55.2%)에 크게 못 미친다.
김주경 국회 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한국은 민간 중심으로 의료 체계가 편성돼 수익이 높은 특정 진료 과목에 집중하는 데다 코로나 치료처럼 필수 의료에 대해 민간 병원은 적극적이지 않은 면이 있다”며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부족한 공공 병원이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기간 확진자 입원 치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밝혔다. 코로나 사태가 지속된 지난 3년 동안 공공 병원은 코로나 입원 환자 전체의 3분의 2 이상(68.1%)을 치료했다.
하지만 공공 병원들은 의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급여와 복지 혜택 등 대우가 민간 병원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영향이 크다. 건강보험공단의 지난해 발표에 따르면, 의사 전체 평균 연봉은 2020년 기준 2억원 수준인데,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들의 지난해 평균 연봉은 1억4891만원으로 훨씬 적었다.
매년 전체 의사 수는 늘어나고 있지만 공공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2016년 국내 전체 의사(9만7713명) 중 공공의료기관에서 일하는 의사는 11.2%(1만961명) 수준이었는데 2021년에는 10.7%(10만9937명 중 1만1793명)로 감소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경우 작년 8월 말 기준 정원이 268명인데 결원이 51명(19%)에 달했다. 2021년 결원율(15.9%)에 비해 3.1%포인트나 늘었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지방의료원 35곳 중 의사 정원을 채운 곳은 9곳에 불과했다. 결원율은 2018년 7.6%에서 작년 9월 기준 14.5%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전북 진안군의료원의 경우 결원율이 33.3%에 달했다. 전국 보건소의 경우 정원 245명 중 53명만 임용된 상태다.
◇정년 연장 추진, 전국 확대 전망
특히 공공 병원은 의사 정년이 민간 병원보다 5년 빠르다. 나가는 만큼 제때 충원이 되지 않으면 의사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런 만큼 의사 정년 연장은 공공 병원들의 숙원 사업 중 하나였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장은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사람 구하기가 힘들다. 근무 여건을 높이지 않는 이상 우수 인력을 구하는 것이 굉장히 큰 고민”이라며 “우수 의사 인력은 정년이 60세인 공공 병원보다는 65세인 민간 대형 병원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국립중앙의료원이 의사 정년을 연장하게 되면 이 모델을 기반으로 전국 230여 개에 달하는 공공 의료기관들도 정년 연장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의료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하지만 정원이 늘어나더라도 실제 현장에 투입되려면 최소 10년은 걸린다”며 “당장 필요한 인력을 채우기 위한 방안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