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401회 국회(임시회) 제4차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고 있다./뉴스1

연금개혁 논의가 공전(空轉)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미적립부채’를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미적립부채는 국민연금공단이 앞으로 수급자들에게 주기로 했지만, 기금이 고갈돼 주지 못하는 ‘잠재부채’를 의미한다. 통상 현재 연금을 받고 있는 수급자와 보험료를 내고 있는 가입자들이 향후 70여 년간 법적으로 받아야 하는 연금 추정액에서 현재 기금 적립금을 빼는 방식으로 계산한다.

이는 결국 현재 세대를 위해 미래 세대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빚’이기도 하다. 그만큼 국민연금 장기 재정 논의에서 핵심이 되는 지표다. 하지만 정부는 비공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8일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올해 들어 열리고 있는 재정계산위원회와 재정추계전문위원회에서 미적립부채가 화두에 오르고 있다. 지난달 10일 개최된 회의에서 위원들은 “미적립부채 계산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 제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4일 열린 회의에서는 이 부채에 대한 의견 청취를 위한 합동회의 개최가 제안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은 가입자들의 고용 주체가 국가이기 때문에 정부가 사용자로서 지급해야 할 확정 부채이지만, 일반 국민이 가입한 국민연금은 이와는 다르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 미적립부채를 모두 정부가 책임지고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칫 미적립부채가 공개될 경우, 이 규모가 모두 국가 부채로 인식돼 국가 신인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윤석명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재정 당국이 인정을 하든 안 하든 국민연금 미적립부채로 인해 국가 부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커질 수밖에 없다”며 “연금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현 시점에서 미적립부채 공개는 불가피하고, 법적으로 따질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정확한 규모가 공개되지 않다 보니 현재 미적립부채 추정치는 기관마다 천차만별이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납세자연맹은 558조원, 보건사회연구원은 약 1500조원으로 추산한다. ‘558조원’은 국민연금공단이 앞으로 수급자들에게 줘야 할 금액(연금충당부채)에서 이미 적립된 기금과 앞으로 거둬들일 금액을 뺀 금액이다. ‘1500조원’은 연금충당부채에서 현재 적립된 기금만 제외한 수치다.

박종상 숙명여대 교수는 “미적립부채는 결국 국가가 메꿔줘야 하기 때문에 국민연금 장기 재정과 국가 재정의 연결고리가 된다”며 “연금개혁이 늦어질수록 미적립부채도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국민이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수치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