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폭력을 당한 청소년의 70~90%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PTSD)과 불안·우울 등 각종 정신 장애를 진단받는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그중 상당수는 성인이 돼서도 후유증이 이어지면서 대인 기피와 사회 부적응, 실직 등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 내 정신건강 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는 소속 정신과 전문의 6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학폭 문제 설문 조사 결과를 15일 공개했다. ‘학폭 피해자에 대한 진단명’을 묻는 질문에 전문의의 94.1%(복수 응답)가 ‘우울 장애’, 72.5%가 ‘불안 장애’, 84.3%가 PTSD라고 각각 답했다. PTSD는 범죄·전쟁·폭행·납치 등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뒤 지속적으로 공포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정신 장애다. PTSD가 심하면 원인 모를 신체 고통이 반복되고, 일부 경험에 대한 기억을 잃거나 분노 조절에 실패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해 회피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

설문 조사 결과, 학폭 피해 청소년들은 공황·발작, 불면증, 대인 기피, 등교 거부 등 임상 증상을 나타냈다. 일부는 자해·자살을 시도했다. 전문의 62.7%는 ‘피해자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증상이 지속됐다’고 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가족을 포함한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실직, 사회 부적응, 알코올 등 물질 남용 장애를 겪은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특정 스트레스 상황에 처하면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이소영 순천향대 부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학폭 피해 후 사회·직업·학업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기능 장애 비율이 높아졌다”며 “학교 폭력을 단순히 지켜본 학생들에게서도 만성적인 무기력감이나 자존감 저하 등 여러 문제가 발견됐다”고 했다. 강윤형 한국학교정신건강의학회 회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은 “학폭은 일부 가해자와 피해자 간 문제를 넘어 사회에 지속적 악영향을 끼친다”며 “학폭 예방을 위한 안전장치를 강화하고 피해자와 학부모·교사를 포함한 지속적인 사후 상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 따르면, 학폭 피해로 상담받은 청소년은 2020년 1235명에서 작년 1667명으로 2년 새 35% 늘었다. 학폭 피해 학생들은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가 열리는 과정에서 보호받는다는 느낌이 없었다”, “서면 사과 형식보다는 친구들 앞에서 가해자로부터 ‘진심으로 미안했어’란 사과를 받고 싶다”고 말했다. “화가 나서 자해와 자살 시도를 했다”, “피해 당시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무기력과 우울감·분노·불신이 든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