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에서 나만의닥터 선재원 대표가 비대면 진료 업계 위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오종찬 기자

“제가 태어난 해인 1988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이 실시됐다고 합니다. 31년간 시범사업만 반복되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비대면 진료가 한시적으로 허용이 돼 이제 진전이 되나 싶었는데, 다음 달 다시 과거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습니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비대면 진료 사업에 뛰어든 선재원(35) 메라키플레이스 대표는 17일 본지 인터뷰에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2021년 8월 설립된 메라키플레이스는 국내 비대면 진료 앱 중 거래액 기준 1위인 ‘나만의닥터’를 운영하는 회사다. 회사를 차린 지 2년도 안된 상황에서 ‘나만의닥터’는 존폐의 기로에 섰다. 한국에서 비대면 진료가 계속 유지될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비대면 진료는 스마트폰, PC 등 IT기기를 이용해 의사에게 원격으로 진료받을 수 있는 서비스다.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2020년 2월 코로나 위기 단계가 ‘심각’ 단계로 격상되면서 비대면 진료는 한시적으로 허용돼왔다. 지난 1월까지 이뤄진 비대면 진료는 3661만건, 누적 이용자 수는 1379만명에 달한다. 하지만 국제보건기구(WHO)의 코로나 종식 선언이 이뤄지고, 정부가 위기 경보 단계를 ‘경계’로 낮추게 되면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 이전처럼 불법이 돼 사업을 종료해야 한다. 이 시점은 다음 달이 유력하다.

◇”OECD 국가중 비대면 진료 안 돼는 유일한 나라 오명”

- 폐업까지 고려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인가.

“그렇다. 정부도 제도화 의지를 밝혔고, 국회에도 관련 법이 여러 건 상정돼 있지만 대부분 비대면 진료 대상은 재진 환자로 제한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이용자 중 99%가 초진 환자다. 초진까지 확대하지 않는 한국의 비대면 진료는 껍데기에 불과하게 된다. 무엇보다 지금 국회에서 논의를 시작해도 시간이 촉박한데 의료관련 논의는 모두 올스톱 돼있어 답답하다”

- 계속 사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나.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CT 규제샌드박스에 신청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샌드박스는 말 그대로 사업 실현 가능성과 위험성을 시험하는 제도다. 비대면 진료는 노태우 정부 시절인 1988년 서울대병원 등 대학병원들과 보건의료원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35년 간 수 십차례 정부 주도의 시범사업이 진행됐고, 코로나 펜데믹 기간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테스트가 진행됐다. 만약 법 개정이 안돼 우리가 샌드박스를 통해서만 사업을 이어가야 한다면 결국 한국의 비대면 진료 수준은 35년전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 2000년 65명의 의사들이 한 비대면진료 사이트에서 이틀만에 13만명을 진료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20년도 더 된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 설립된 원격의료업체 텔레닥은 2015년 뉴욕증권 거래소에 상장했고, 지금은 시총 5조원이 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제 부실 진료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는 내려 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코로나 펜데믹 기간 중 이뤄진 3661만건의 비대면 진료 중 안전사고는 5건에 불과했다. 모두 기재 실수나 누락 등 경미한 내용들이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비대면 진료가 허용되지 않는 곳은 한국 밖에 없고, 주요7개국 (G7) 중 이탈리아를 제외한 6개국에서는 초진도 허용한다.”

작년 2월 서울 중구의 한 병원에서 의료진이 재택치료 중인 코로나19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대면 진료를 하고 있다./뉴스1

◇코로나 속 비대면진료 우려 대부분 해소… “플랫폼 입점 의료기관 90%는 자발적 가입”

- 한국에서는 왜 제도화가 안된 것인가.

“의사들은 비대면 진료가 되면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를, 약사들은 특정약국 쏠림 현상을 우려해 반대해왔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비대면 진료 허용한 결과 진료의 79%가 의원급에서 진행됐다. 약국 편중 우려 역시 앱에서는 환자 위치에 따라 가까운 약국을 보여주는데다, 현실적으로 멀리 있는 약국의 경우 배송비가 더 나오기 때문에 환자들이 굳이 선택하지 않는다.”

- 대리처방, 오배송, 오남용 등 안전성 문제도 제기된다.

“안정성 문제는 대면 진료 현장에서도 이미 발생하고 있는 문제들인만큼 ‘비대면진료 전면 금지’보다 다른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 플랫폼에서 본인확인 절차를 강화하면 대리처방 사각지대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비대면 진료 처방 불가 의약품을 자체 솔루션으로 개발해 적용하고 있는데, 정부에서 일부 의약품에 대해서만 허용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그에 따르면 된다. 안전성 문제는 3000만건 이상의 비대면 진료 경험으로 충분히 증명됐다고 본다.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완 수단이다. 생명과 직결되는 긴급한 증상은 앞으로도 기존 대면 진료 체계에서 이뤄져야 한다.”

- 결국 의료계가 동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만의닥터’에 입점한 병원·의원·약국 1000여곳 중 90%는 자진해서 입점한 의료기관들이다. 우리가 직접 병원이나 약국 유치를 위한 영업은 거의 하지 않는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있다 보니, 의약계 전체가 반대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선의 많은 의약사들은 비대면 진료의 필요성과 편의성에 공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