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코로나가 미스터리다. 작년 5월 평양이 코로나에 뚫리자 김정은은 새벽에 정치국 회의를 열어 “건국 이래 대동란” “최중대 비상사건”이라고 했다. 그런데 북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대규모로 발생했다는 첩보는 없다. 오히려 북한은 최대 교역국 중국과 본격적인 국경 개방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북은 코로나 위기를 넘긴 것인가.
북한은 작년 5월 코로나 발병을 처음 인정했고 그해 8월 코로나 종식을 선언했다. 석 달 동안 북한이 발표한 코로나 관련 유열자(발열자)는 누적 통계로 477만명이다. 그런데 사망자는 73명이라고 했다. 치명률이 0.002%에도 못 미친다. 북한은 아프리카 에리트레아와 함께 전 세계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도 안 한 유이한 곳이다. 한국의 백신 미접종자 치명률이 0.6%임을 감안할 때 북한 통계는 ‘거짓’으로 보인다.
한 전문가는 “작년 북에 코로나가 퍼질 때는 바이러스 병독성이 2020년보다 상당히 떨어진 상태였다”며 “공개 안 된 희생자를 내고 ‘자연면역’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올 초 중국이 방역을 완화했을 때 코로나가 폭발적으로 번졌지만 사망자는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한 고위 탈북자는 “작년 평양을 중심으로 코로나가 퍼졌을 때 공포가 적지 않았지만 감기처럼 앓다가 회복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코로나 포비아(공포증)도 줄었다”고 했다.
북한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는 불분명하다. 작년 5월 미국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매트는 북한 인구 1000만명당 최소 4만4000명이 사망할 것으로 추정했다.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사망자가 22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대북 소식통은 “바이러스 병독성이 극심했던 2020년과 2021년에 북한은 ‘갈라파고스섬’ 수준으로 국경을 봉쇄하고 주민 이동을 차단하는 극단적 방역을 했다”며 “2~3년 전엔 북한식 방역이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했다. 작년 이후 18세 이하와 노년층을 중심으로 코로나 희생자가 속출했지만 체제를 흔들 정도의 대규모 사망자는 아직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T세포 교차면역’ 덕분에 사망률이 낮은 것 아니냐는 추정도 외국에서 나왔다. 과거 일반 감기에 걸려 만들어진 T세포(면역)가 코로나에도 면역을 가진다는 것인데, 빈곤국에서 이런 현상이 더 관측된다고 한다. 다만 국내 한 전문가는 “감기와 코로나로 인한 T세포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마상혁 창원파티마병원 소아청소년과장도 “영양 상태가 나쁘면 면역력이 떨어져 감염에 매우 취약해진다”고 했다.
북한이 경제난 때문에 국경을 활짝 열면 코로나 위기가 뒤늦게 닥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철저한 국경 봉쇄 덕분에 북한에 바이러스가 제대로 유입되지 않았을 수 있다”며 “(코로나 유행에서 북한은) 아직 진공 상태에 가깝다”고 했다. 사람과 물자가 본격적으로 오가면 특정 지역 봉쇄로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 북한은 코로나 방역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책을 내놨다.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평양출판사는 ‘신화적인 방역 대승을 안아오신 위대한 사랑’이란 제목의 선전물을 발간했다. 책은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방역 선진국이라고 자처하던 나라들까지 패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우리는 승리했다”며 방역 성공을 김정은 업적으로 돌렸다. 안보 부서 관계자는 “북한의 식량난이 심해지고 있다”며 “코로나 통계를 속이는 상황에서 최고지도자가 오판하면 코로나 위기가 뒤늦게 닥칠 수도 있다”고 했다.
북한 선전 기관 보도를 보면 주민들은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며 생활하고 있다. 특히 김정은이 참석하는 행사에선 모두 마스크를 착용한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최근 주민들에게 방역 기조를 이어가면서 ‘안일과 해이’를 경계하라고 했다. 중국·러시아에서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있다고 알리며 경각심을 높였다. 국경 개방을 대비한 조치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