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샛강 산책로에 봄 불청객 꽃가루(버드나무와 수양버들의 솜털달린 씨)가 날려 쌓이고 있다./이덕훈 기자

기온이 올라가면서 각종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재채기, 콧물, 결막염 등으로 병원을 찾는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도 급증하고 있다. 국내엔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 수에 대한 정확한 정부 통계가 없다. 전문가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의 알레르기성 비염 및 결막염 환자 규모 등을 바탕으로 국내 인구의 10% 정도가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고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 500만명은 된다는 분석이다. ‘국민 질환’으로 불릴 만한 상황이다.

알레르기 일으키는 꽃가루 Q&A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꽃가루가 주원인으로 꼽히는 알레르기 비염 환자는 2021년 491만명을 기록했다. 코로나로 마스크를 쓰기 전인 2019년엔 707만명을 찍었고 코로나 기간 다소 감소했지만 작년부터 다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작년 8월까지 환자가 631만명이다. 서울의 이비인후과 전문의는 “최근 꽃가루 알레르기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작년보다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꽃가루 때문에 눈물이 쏟아지고 눈이 가려운 알레르기성 결막염 환자 수도 180만명이 넘는다. 삼나무가 많은 일본은 전체 인구의 40%(약 4900만명), 산림이 울창한 미국은 성인의 26%(약 660만명) 정도가 꽃가루로 촉발되는 ‘계절성 알레르기’ 환자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1970년대부터 시작된 산림 녹화 사업으로 나무가 많아지면서 꽃가루 알레르기 환자는 계속 증가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국내 꽃가루 환자 수가 늘고 있는 주원인은 ‘꽃가루 방출량’과 ‘노출 기간’이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1973년부터 1997년까지 1·2·3차 산림 녹화 사업을 통해 전국 200만ha 이상 산림에 나무를 심었다. 이후에도 산불 피해지 등을 위주로 매년 2만ha 산지에 나무를 심고 있다.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주범은 꽃보다 나무다. 진달래·개나리처럼 곤충이 꽃가루를 전달하는 ‘충매화(蟲媒花)’가 아니라, 참나무·오리나무·자작나무·삼나무처럼 번식을 위해 봄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 보내는 ‘풍매화(風媒花)’가 알레르기를 일으킨다는 뜻이다. 따라서 산림 증가는 꽃가루 방출량 증가와 알레르기 환자 급증으로 연결된다.

기후변화로 개화 시기가 빨라지면서 ‘꽃가루 노출 기간’이 늘어난 것도 주원인으로 꼽힌다. 꽃가루 농도는 기온이 20~30도일 때 가장 짙다. 그래서 4~5월에 기승을 부린다. 국립수목원은 2021년 우리나라 대표적 침엽수 4종(소나무·잣나무·구상나무·주목)의 꽃가루 날림 시작 일이 2009년 관측 이래 보름 정도(연평균 1.43일) 빨라졌다고 발표한 바 있다.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눈에 보이는 꽃가루들은 알레르기를 거의 일으키지 않는다”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 꽃가루들이 알레르기를 유발한다”고 했다. 알레르기 유발 꽃가루 입자는 직경이 10~30마이크로미터(㎛) 정도로 머리카락 굵기(50~70㎛)보다 작다고 한다. 숲의 낙엽 더미 등 습한 곳에서 발견되는 곰팡이 포자도 눈에 보이지 않으며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다.

이런 작은 꽃가루 입자들이 일정량 이상 코점막 등 호흡기로 들어오면 우리 몸은 이 꽃가루를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항원으로 인식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한 면역 물질로 히스타민 등 화학물질을 방출하는데 이 히스타민은 재채기, 콧물 등 알레르기 증상을 유발한다고 한다. 한 알레르기내과 전문의는 “꽃가루 알레르기는 기존 질환 때문이 아니라 꽃가루에 반복적으로 노출됐을 때 생기는 질환”이라며 “한번 꽃가루 알레르기 증세가 나타나면 만성화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몸이 알레르기 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꽃가루 노출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런데 한 번 임계치를 넘어 알레르기 증상이 나타나면 매년 반복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한번 반응이 생기면 이후 소량의 꽃가루가 들어와도 몸이 자동으로 면역 물질을 과다 분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꽃가루 농도가 심해지는 봄철엔 숲 입구에 ‘꽃가루 주의’ ‘알레르기 환자 우회로 이용 권고’ 같은 팻말을 붙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알레르기 유발성이 강한 삼나무가 전국 70% 산지에 분포하고 있는 일본은 일기예보를 통해 지역별 꽃가루 지수를 제공한다. 3월 꽃가루 농도가 최고조에 달할 때는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가 휴교하기도 한다. 권혁수 서울아산병원 알레르기내과 교수는 “특히 삼나무는 알레르기를 잘 유발한다”며 “우리나라는 삼나무가 주로 제주도에 분포하기 때문에 덜했지만 기후변화로 서식지가 점차 북상하고 있어 알레르기 환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엔 이 같은 ‘꽃가루 경고·대응’ 체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알레르기 내과 전문의들은 “알레르기 유발 꽃가루를 날리는 국내 대표 수종인 참나무·오리나무·자작나무·삼나무 등은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수백킬로까지 퍼지기 때문에 꽃가루 노출은 피하기가 어렵다”며 “강원도나 충청도 참나무의 꽃가루가 서울까지 날아온다”고 했다. 국내 꽃가루 날림은 4~5월 절정을 이루다가 6월 중순쯤 잦아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