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계 최저 출산율,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를 주제로 열린 건전재정포럼 정책토론회에서 참가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건전재정포럼

전직 경제 관료와 재정학자 등 120명이 회원인 건전재정포럼이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세계 최저 출산율, 발상의 전환 필요하다’를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최종찬 건전재정포럼 대표(전 건설교통부 장관)는 “이대로 가면 2050년 노인 인구가 40%를 웃돌아 경제성장률은 0%에 근접하고, 복지 수요 증가로 국가 부채는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오르고, 출생아 감소로 국방력 유지도 어렵게 된다”며 “저출산 극복은 미래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대책”이라고 말했다.

2006년부터 2022년까지 17년간 우리나라가 저출산에 쏟아부은 예산은 332조원이다. 지난해에만 52조원을 썼다. 반면 1990년 1.57명이던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0.78명으로 50% 급락했다. 2025년엔 0.61명까지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그러나 최슬기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가 2021~2022년 두 차례 국내 미혼 남녀(25~49세) 908명·834명에게 각각 물어본 결과 남성의 3분의 2(66%)와 여성의 절반 가까이(47%)는 결혼을 하고 싶어했다. 남녀 절반 이상(65%)은 이상적인 자녀 수가 “2명”이라고 답했다. 현재의 초저출산은 현실적 어려움으로 원하는 만큼 낳지 못하고 있는 “원하지 않은 선택”이라는 뜻이다.

참가자들은 “소득 제한, 자녀 수 제한, 자녀 연령 제한 등 갖가지 제한으로 정책 대상자를 축소하거나 제한하지 않고, 첫째아부터 다자녀까지 폭넓게 지원해 청년들이 ‘미래를 배우자·자녀와 함께 살아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도록 환경을 조성해주는 정책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 교수는 먼저 ‘아빠 출산휴가 30일 도입’을 제안했다. 남성(아빠)의 육아 참여를 정책으로 뒷받침해 여성(엄마)의 독박육아를 깨트리자는 것이다. 현재 엄마는 산전휴가 90일, 아빠는 배우자 출산휴가 10일을 받게 돼 있다. 최 교수는 “출산 주체를 엄마로만 보는 건 낡은 사고방식”이라며 “도움이 가장 절박한 시기인 출산 초기에 아빠에게도 최소 한달간의 유급(임금 100% 보전·상한 500만원) 휴가를 보장해 주양육자라는 정체성을 확립하고 복직 후에도 가사·육아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돌봄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실제로 둘째 출산 직후 1개월 육아휴직을 사용한 남성 A씨는 “가사와 육아에 보조자가 아닌 주책임자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하다 보니 와이프의 일(육아)을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돈만 벌어다주는 기계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버지이자 가족 구성원이라는 인식 변화를 체감한 소중한 기회였다”고 했다.

독일의 경우 남성 육아휴직 할당제를 도입해 2006년 3.5%에 불과하던 남성 육아휴직 사용자 비율이 2014년 34%로 증가했다. 2000년 1.38명이던 합계출산율은 2021년 1.58명으로 올랐다. 가부장적인 사회 분위기를 성평등한 사회로 구성원들 의식을 바꾼 게 주효했다.

직장에서 점심시간을 ‘30분’으로 줄이고 대신 퇴근 시간을 10분 이상 앞당기는 유연근무제를 적극 활용하자는 의견도 제시했다. 실제로 일·가정 양립이 잘 갖춰져 있는 덴마크 등 유럽 상당수 나라는 점심시간이 30분 이내다.

‘영유아 동반 우선주차권’을 발급해주자는 주장도 나왔다. 장애인우선주차구역처럼 임신부에게 우선주차증을 발급해주고 출산 후엔 정부가 제공하는 ‘첫만남꾸러미’에 3년간 유효한 우선주차증을 넣어 영유아를 동반할 경우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첫째 아이부터 둘째 아이까지 보통 2~3년의 터울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두 명의 아이를 가질 경우 임신 기간을 포함해 약 6년에서 최대 8년까지 우선주차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최 교수는 “우리 사회가 육아친화적 사회로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신호가 필요하다”며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소비자 감소로 이어져 기업에게도 손해이기 때문에 저출산에 영향을 미치는 일터의 문화나 규정을 개정하는 데 기업들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