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논란이 의료계 블랙홀이 되면서 정작 국민 건강과 생활에 직결되는 의료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는 지적이 14일 나온다.
의사를 늘리기 위한 의대 정원 문제부터 발등의 불이다. 최근 소아과 대란과 응급실 등 비인기 분야의 인력 부족 사태를 풀려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견해가 많다. 정부는 18년째 연간 3058명으로 동결된 의대 정원을 늦어도 2025년부터는 확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간호법에 밀려 의료계와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외과·산부인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지원을 늘리려면 진료 수가(酬價) 조정이 중요하다. 국내 필수 의료 수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내년도 수가 협상이 지난 11일 시작됐지만 정부와 의료 단체들 관심은 간호법에만 쏠려 있다. 코로나 위기 단계 완화로 ‘불법’ 위기에 몰린 비대면 진료 문제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조만간 ‘시범 사업’ 형태를 도입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 진료 범위 등을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의료계와 비대면 플랫폼 사업자 모두 “정부가 속히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했다.
간호법 제정과 별개로 간호사 처우 개선은 시급한 문제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에 따르면, 우리나라 일반 병동 간호사는 1인당 평균 환자 15.6명을, 간호·간병 통합 병동 근무자는 9.9명을 돌보고 있다. 미국 5명, 호주 5~5.3명, 일본 7~10명보다 2~3배 과중하다. 간호사 업무 영역과 관련, 돌봄 인력이 부족한 지역의 경우 간호사의 독자적 활동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간호조무사(간무사) 단체는 간무사 응시 자격을 ‘고졸’로 제한한 것을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간무사 양성 특성화고는 ‘고졸 유지’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 중재가 필요한 의료 현안들이다. 이를 해결해 갈 전략도 방향도 없이 간호법 제정을 놓고 우왕좌왕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복지부 고위 관계자는 “간호법 사태에 대응하느라 중요한 다른 의료 현안엔 손도 못 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