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43)씨는 이달 초 대학 친구들과 저녁 자리에서 “공황장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자 이 자리에 있던 친구 3명 중 2명이 “나도 공황장애 약을 복용한 적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본지에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내 주변에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했다.
15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민 20만540명(2021년 기준)이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다. 10년 전인 2012년(7만9997명)의 2.5배로 급증했다. 공황장애는 불안 장애의 일종이다. 갑자기 가슴이 뛰고 숨이 막혀 쓰러질 듯한 발작이 한 달 이상 지속하면 공황장애 진단이 내려진다. 이 질환은 ‘연예인 병’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김구라·이경규·이병헌씨 등이 이 병을 앓고 있다고 밝히면서 일반에 많이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공황장애는 ‘40대 병’이다. 2021년 공황장애 진단을 받은 40대는 4만6924명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율(23%)을 차지했다. 공황장애 환자 네 명 중 한 명은 40대라는 뜻이다. 10년 전인 2012년 40대 공황장애 환자(2만2824명)보다 2배나 많은 수치다. 당시에도 40대 비율이 27%로 가장 컸다. 전문가들은 “세계적으로 공황장애는 20대 초·중반에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며 “40대 환자가 많은 것은 한국의 특이한 경향”이라고 했다. 40대 다음은 50대(3만8519명)였다. 40·50대를 합치면 그 비율이 42%로 절반에 육박한다.
공황장애의 정확한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트레스와 관련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강지인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가 (공황장애를 촉발하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며 “공황 발작을 경험한 사람 대부분은 증상을 겪기 전 정신적 스트레스가 누적된 경우가 많다”고 했다.
국민건강보험 일산병원 이정석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의 중추인 40대가 특히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했다. 부모·자녀 문제 등에 시달리다 공황장애를 얻은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40대는 직장에선 권위적인 위 세대와 자율적인 아래 세대 사이에 끼어 있다”며 “자녀가 본격적인 (입시) 공부를 시작하는데 건강 등이 점차 쇠퇴하는 걸 느끼면서 큰 사회적 압박을 받게 된다”고 했다. 최모(44)씨는 “아버지와 아들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며 “집 대출금, 직장 관련 스트레스가 컸는데, 작년 초 갑자기 사무실에서 숨이 막혀 죽을 듯한 공황 발작이 왔다”고 했다.
공황장애는 인구의 3~5% 정도가 걸릴 수 있다. 2006년 미국 국가 공병률 조사(NCSR)에선 전체 인구의 4.7%가 공황장애에 걸린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공황장애 인구가 200만명을 훌쩍 넘어설 수 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환자 수가 더 증가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공황장애 급증의 원인이 ‘연예인’이란 지적도 있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공황장애 투병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히면서, 그동안 이 질환을 참아왔던 사람들까지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었다는 것이다.
박형근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공황장애는 약물 치료와 정기적인 상담을 병행하면 치료 효과가 좋다”며 “증상을 방치하면 일상생활에서 큰 고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병원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