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제주시의 한 도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50대 A씨가 삼거리에서 정지 신호를 위반한 채 직진하다가 오른편에서 좌회전 신호를 받고 달려오던 차량과 부딪히는 사고를 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해당 교통사고를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로 보고, 이후 A씨가 치료 받은 의료기관에 지급한 건보 급여 600만원에 대해서 도로 거둬들이라는 처분을 했다. A씨가 신호위반으로 교통사고를 냈으니 부당이득을 취했다는 것이다.
도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나 킥보드를 타다가 신호위반 등으로 사고를 내면 병원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22일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타다가 신호위반·보도침범·음주운행 등 운전자가 지켜야 할 12가지 중대한 의무를 위반해 교통사고를 내고 치료를 받는 경우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급여 제한에 해당돼 건강보험 지원이 되지 않을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지난해 4월 20일부터 시행한 도로교통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만 13세 이상인 사람이 도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나 킥보드 등 놀이기구를 타다 사고가 나면 이를 도로교통법상 ‘차(車)’로 간주해 교통사고로 처리한다. 건보공단은 “관련 법 시행 후 1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인라인스케이트 등을 차라고 인식하지 못해 신호를 위반해 발생하는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며 도로교통법규를 준수할 것을 강조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제53조에 따라 건보공단은 건보 가입자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범죄 행위를 일으켰을 경우 급여 지급을 제한한다. 또 이미 의료기관 등에 지급한 경우에는 가입자가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보고 이를 징수하는 처분을 한다. 이 같은 처분에 대해 당사자는 이의 신청을 할 수 있다.
A씨 또한 건보공단의 환수 고지 처분에 불복해 이의 신청을 냈다. 올해 초 건강보험이의신청위원회는 A씨가 낸 사고를 중대한 과실로 인한 범죄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환수 처분을 취소했다. 운행 경력과 도로 상황, 수사기관의 처분 정도, 타인의 신체 피해가 없는 점 등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 불가피한 상황이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사고가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보기 어렵다는 인정을 받아야 A씨처럼 수급권을 보장 받을 수 있다. 이는 지난 2021년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건보공단에서 이의신청 업무를 주관하는 엄호윤 법무지원실장은 “위원회 인용 결정은 신청인의 불가피한 상황을 반영한 예외적인 사례”라며 “도로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때에는 신호위반·보도침범·음주운행 등 12대 중대 의무를 위반한 교통사고 치료는 원칙적으로 건강보험 급여가 제한될 수 있으므로 도로교통법규를 위반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