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질환을 앓고 있는 A씨는 지난 19일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술 나흘 전 일정을 연기한다는 병원 통보를 받았다. A씨는 “병원 사정으로 수술이 어렵게 됐다는 말만 하고 자세한 이유도, 언제 수술이 가능한지도 알려주지 않았다”며 “사지마비를 막으려고 20년 가까이 다닌 회사도 그만둘 상황인데 답답하다”고 했다.
병원 수술실에서 메스(외과용 칼)를 들 수 있는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 촌각을 다퉈 수술을 받아야 하는 환자는 쌓이는데 집도할 의사가 부족해 예약이 뒤로 밀리거나 잡혔던 수술이 취소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특히 뇌, 척추 등 수술이 어려운 신경외과와 정형외과 등은 상급 종합병원에서도 의사 부족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숙련된 개두술 의사 전국에 133명뿐
통계상 올해 1분기 서울에서 활동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1642명으로 2018년 말의 1460명에 비해 12.5% 늘었다. 그러나 어려운 수술을 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줄었다. 3차 의료기관인 상급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정형외과 전문의는 같은 기간 251명에서 219명으로 12.7% 감소했다. 2차 의료기관인 종합병원에서도 정형외과 전문의는 255명에서 243명으로 4.7% 줄었다. 수술을 거의 하지 않는 의원급의 정형외과 의사만 28% 이상 증가한 것이다.
뇌를 열어야 하는 신경외과 수술 전문의도 사라지고 있다. 상급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신경외과 전문의는 2018년에 비해 1% 줄었고, 일반 종합병원에서도 3% 감소했다. 지난해 서울 아산병원 간호사가 뇌출혈로 쓰러졌지만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한뇌혈관외과학회에 따르면 전국에 숙련된 개두술(머리를 열고 수술) 의사는 133명에 그친다.
◇수술방 필수 마취과 의사들도 ‘품절’… “정년퇴임한 교수도 재고용”
수술실 필수 인력인 마취과 전문의도 부족한 실정이다. 서울 대형 병원의 한 마취통증 전문의는 “수도권 상급 종합병원들도 65세로 정년 퇴임한 마취과 교수들을 촉탁 의사나 진료 교수로 다시 고용하는 일이 흔하다”고 했다.
연준흠 대한마취통증의학회장(인제대 상계백병원 교수)은 “1년에 전공의를 200명 배출하니 수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수술방보다는 당직도 없고 칼퇴근이 가능한 통증 클리닉으로 가는 의사가 많다”며 “9월부터 수술실 CCTV를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법안도 의사들이 어려운 수술을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