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로 드러난 ‘영아 살해’ 사건은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 존재를 확인할 수 없는 제도적 미비 문제도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산부인과 등에서 출산을 할 경우 의료 기관은 행정 기관에 출생 사실을 통보할 의무가 없다. 부모에게 ‘주민등록법상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알려줄 뿐이다. 의료 기관과 출생신고를 받는 지자체 등과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이다. 부모가 1개월 이내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도 과태료 5만원이 전부다. 출생신고를 안 해도 형사 처벌 대상이 아니다.

산부인과 등은 출산 한 달 안에 결핵예방접종(BCG) 등을 한다. BCG는 의무 접종이라 무료인데 병원은 이를 질병청에 신고해서 정부 지원금을 받는다. 이때 질병청과 보건복지부는 ‘영아 접종’ 자료를 확보하지만 출생 사실을 지자체 등에 통보하거나 출생신고가 됐는지를 비교 확인할 의무가 없다. 이번 감사원 감사는 영아 접종 자료와 실제 출생신고 기록을 비교해서 ‘영아 실종’ 실태를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 관계자는 “병원에서 영아 예방 접종을 하면 복지부가 출생 관련 자료를 얻게 되는데도, 출생을 담당하는 정부 기관이 이를 알 수 없는 시스템은 문제”라고 했다.

극단적 사례로 부모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고 정부 지원금으로 예방 접종까지 해도 스스로 ‘출생신고’를 하지 않으면 아이는 ‘투명 인간’으로 남는 것이다. ‘영아 살해’ 사건이 있어도 정부 당국은 모를 수 있다는 의미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 2020년부터 2022년 7월까지 사회복지시설 입소자 중 출생 등록이 안 된 아동은 269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실제 미등록 아동은 훨씬 많을 수 있다”고 했다. 지난 3월 생후 76일 된 딸을 방치해 숨지게 한 친모가 구속됐는데, 이 친모도 숨진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다. 2021년 1월에는 인천에서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여덟 살 여자아이가 친모에 의해 목숨을 잃는 사건도 벌어졌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10세가 넘어 존재가 확인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는 지난 4월 ‘출생 통보제’ 도입 방침을 밝혔다. 출생 통보제는 의료 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영·유아의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고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아동이 확인되면 지자체장이 직권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는 제도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3일까지 ‘의료기관 출생통보제 도입’ 관련 설문 조사를 한 결과 국민 10명 중 8명은 찬성했다. 반면 의료계는 행정 부담이 커진다며 반대하는 입장이다. 임신부가 병원 밖에서 위험한 출산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