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후 서울대병원 본관 13층. 전종관(64) 서울대 의대 교수의 손에 핸드폰과 충전기가 들려 있었다. 그는 “산부인과 의사는 ‘5분 대기조’ 같은 삶을 산다”며 “언제 갑자기 아기 나온다는 전화가 올지 모르니 배터리 충전을 제대로 해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지난 34년간 신생아 2만5000명을 받은 국내 최고 다태아 분만 전문가다. 쌍둥이가 9000명, 삼·사·오둥이 등은 1600명에 달한다. 산모들은 전 교수를 ‘갓(God)종관’이라고 부른다. ‘출산의 신(神)’이란 뜻이다. 지난 2분기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0.7명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국 중 출산율이 1명 미만인 곳은 한국뿐이다.
-한국의 저출생 현실을 체감하는가.
“한 달 평균 90명가량의 신생아를 분만시켜 아기 울음소리 듣기 어렵다는 상황은 체감하지 못한다. 하지만 숫자가 말하는 한국의 저출생은 매우 심각하다. OECD 국가 중 그냥 꼴찌가 아니라 ‘심각한’ 꼴찌다. 한국 다음으로 출산율이 낮은 이탈리아의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OECD 평균(1.59명)에 가깝다. 같은 하위권이라고 해도 우리와는 상황이 다르다.”
출산율 반등했을 때 정책 분석해야
-젊은 층은 ‘아이 낳기 어려운 세상’이라고 한다.
“10년 넘게 280조원을 쓰고도 나아진 게 없다고 비판만 할 때가 아니다. 출산율 추이를 보면 중간에 조금 올랐던 때가 있다. 당시 어떤 정책들에 얼마의 예산이 사용됐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대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산부인과 의사로서 저출산 문제 해결에 기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임신과 출산이 평생 다시 하기 싫을 만큼 힘든 일이 아니라는 걸 산모가 경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면 둘째도 셋째도 낳을 수 있다. 임신하면 몸과 마음에 여러 가지 불편하고 힘든 변화가 생긴다. 주변에선 검증되지 않은 얘기로 산모를 옥죈다. ‘임신 중에 약을 복용하면 아기에게 문제가 생긴다’ ‘쌍둥이 임신했을 때는 12주까지 위험하니 반드시 안정을 취해야 한다’ ‘커피 마시면 안 된다’ 등 과도한 금기들이다. 산부인과 의사가 이런 근거 없는 금기와 미신을 깨뜨려 산모가 힘들지 않게 도울 수 있다.”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임신 중 약을 쓰면 아기에게 좋지 않다는 편견 때문에 산모들이 겪지 않아도 될 괴로움과 고통을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 속이 더부룩하고 쓰릴 땐 소화제와 제산제를 복용할 수 있다. 항생제도 대부분 괜찮다. 아기에게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산모를 위해 약을 쓸 수 있다. 물론 적정량 등 의학적으로 검증된 근거가 있어야 한다.”
-임신 초기 과도한 주의는 오히려 좋지 않다고 했는데.
“임신 초기에 운동해도 전혀 문제없다. 수영을 하거나 집에서 자전거를 타도 좋다. 커피도 하루에 아메리카노 3잔 미만으로 마시는 건 괜찮다. 산모가 지켜야 할 건 딱 하나다. 술과 담배를 제외하고 1년 전에 생활한 그대로 하는 것이다.”
-아기 잘 받는 비법이 따로 있나.
“교과서에 나온 것 그대로 한다. 내가 맡은 다태아 분만 산모의 80% 이상은 과배란 주사를 맞거나 유도제를 먹고 인공수정을 시도하거나, 시험관 시술을 통해 아이를 낳는 경우다. 힘들게 임신해서 나를 찾아오는 산모 중에는 45세도 적지 않고, 쌍둥이를 임신한 46세도 있었다. 젊은 여성에게 난자를 공여받아 쌍둥이를 임신한 56세 산모도 있었다.”
삼둥이부터 형·동생 정하는데 ‘부담’
-진료실에서 눈물 보일 때가 잦다고 했는데.
“산모 대부분이 분만실에서 운다. 힘들게 임신하고 출산하는 경우에는 분만실뿐 아니라 마지막 외래 진료 보는 날에도 눈물을 흘린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위로의 말을 건네면 대성통곡하기도 한다. 그동안 산모가 겪었을 힘듦과 어려움을 같이 느껴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다둥이 형제·자매 서열은 어떻게 정하나.
“다태아 분만에선 자궁경부에 더 가까운 아이를 먼저 꺼낸다. 쌍둥이는 보통 서로 다른 위치에 있어 태어나기 전에 형제 관계가 정해진다. 삼둥이부터는 조금 다르다. 우선 첫째를 꺼낸다. 둘째와 셋째는 위치가 비슷한 경우가 있다. 이때는 이전에 초음파 보면서 누가 조금이라도 자궁경부에 가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순서를 정한다. 거의 대부분 조금씩 위치가 달라 순서를 정하는 게 어렵지는 않지만, 위치가 똑같은 경우 누굴 먼저 선택해야 할지 부담되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산모와 아기는.
“2019년 대구에서 올라온 산모다. 30주에 쌍둥이를 분만했는데, 지금까지 받은 쌍둥이 중에 몸무게 차이가 가장 많이 났다. 대구의 한 병원에선 몸집 차이가 너무 나서 한 명은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는데, 엄마가 아이를 살리겠다며 우리 병원에 온 거다. 분만하고 보니, 첫째는 1.5㎏, 둘째가 410g이었다. 얼마 전 그 산모를 다시 만났다. 이제는 동생이 오빠한테 덤비고 서로 싸우기도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하하.”
-아이 낳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그동안 만났던 산모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아기를 보고 있으면 감격스럽다는 것이다. 산모 대부분이 아기가 그냥 예쁘다고 하지 않는다. ‘너무’ 예쁘다고 한다. 이런 기분과 감정은 근거를 들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울고, 보채고, 안아줘야 한다. 키우기 얼마나 어려운가. 부모가 됐다는 사실, 자식의 존재 자체가 주는 기쁨과 환희는 낳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어려운 일들이 많겠지만, 아이 낳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전 교수는 인터뷰 전날인 19일 새벽 3시부터 밤 10시까지 19시간 동안 신생아 25명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산과 의사로 일하면서 아기를 가장 많이 받은 날이었다”며 “퇴근할 때 ‘일 좀 했네!’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3만명까지 아이 받아보고 싶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기를 받고 있다. 힘들지 않은가.
“정말 괜찮다. 산모들을 위해 아기 받는 일에 더 진심일 수밖에 없다. 많은 산모를 만났지만, 아이를 낳다가 갑자기 숨진 엄마들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럴 때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책임을 떠올린다. 더 열심히 아기를 받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내년에 은퇴를 앞두고 있다.
“여전히 아기 받는 일이 즐겁고 행복하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산과 의사 일을 계속할 생각이다. 내년 8월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일할 수 있지만, 그보다 5개월 일찍 이대목동병원으로 옮겨 고위험 산모를 진료한다. 3만명까지 아이를 받아보고 싶다.”
☞전종관 교수는
1984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1995년 서울대병원 교수가 됐다. 산부인과 의사로 34년간 신생아 2만5000여 명을 받았다. 이 중 쌍둥이 9000명 등 다둥이만 1만명이 넘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