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우울증 환자가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중엔 20대 여성이 12만1534명(12.1%)으로 가장 많았다. 지난 2020년까지는 우울증 환자 중 60대 여성이 최다였다. 젊을 때 참다가 화병 등이 쌓이면서 우울증 진단을 받은 것으로 해석됐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의학과 교수는 “요즘 20대 여성은 우울증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여성’이면서 취업난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20대 청년’의 교집합 세대”라며 “특히 여성도 결혼 전 독립해서 생활하는 1인 가구가 많은데 주변 가족 등이 챙겨주기 어려운 상황이면 우울증에 더 취약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받은 최근 5년간(2018∼2022년) 우울증 진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진단 인원은 작년 기준 100만744명으로 처음으로 100만명을 넘어섰다. 2018년의 75만2976명에 비해 32.9% 증가했다. 우울증 환자는 2019년 79만9011명, 2020년 83만2378명, 2021년 91만5298명으로 계속 늘고 있다.
지난해 우울증 진료 인원을 성별로 보면, 여성이 67만4555명으로 남성 32만6189명에 비해 2배 이상 많았다. 같은 기간 연령별 진단 인원은 20대가 18만5942명(18.6%)으로 최다였다. 그다음은 30대 16만108명(16%), 60대 14만3090명(14.3%), 40대 14만2086명(14.2%), 50대 12만6453명(12.6%), 70대 11만883명(11.1%), 80대 이상 7만1021명(7.1%) 순이었다.
성별과 연령을 모두 따졌을 때 지난해 우울증 진료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20대 여성(12만1534명)이었다. 그 뒤가 30대 여성(10만7587명), 60대 여성(10만432명), 40대 여성(9만3113)이었다. 특히 20대 여성 우울증 환자는 2018년 5만7696명에서 5년간 2.1배 늘었다. 가장 가파르게 환자 수가 늘어난 것도 20대 여성이었다.
전문가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우울증 환자가 2~3배 많은 것은 전 세계적 현상”이라고 했다. 여성 호르몬이 남성 호르몬에 비해 감정이나 날씨(일조량 등), 음주 등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에 우리나라 20대가 겪는 스트레스 요인이 겹치면서 20대 여성 우울증 환자가 급증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었다. 나해란 정신건강의학과 대표 원장은 “불안증과 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20대 취업 준비생, 고시 준비생들이 정신과를 점점 많이 찾아온다”며 “취업 때문에 고등학생 같은 대학생 생활을 해야 하는 우리나라 20대는 우울증 발생 빈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코로나에서 원인을 찾는 전문가도 많다. 지금 20대 여성 상당수는 코로나 시기 고교생이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여고생 시절은 관계 맺기 수요(욕구)가 가장 큰 시기인데 이때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관계가 단절됐다”며 “대신 이들은 소셜미디어(SNS) 등으로 관계 맺기를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낀 세대”라고 했다. 소셜미디어에 담긴 다른 사람의 화려한 모습을 보면서 상대적인 빈곤감과 고립감에 빠지고 우울증으로 이어졌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20대 여성의 폭음률 증가도 우울증 악화 요인으로 꼽았다. 질병관리청 조사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월간 폭음률(월 1회 이상 한 번 술자리에서 5잔 이상 음주)은 2005년 30.7%에서 2018년 49.8%로 뛰었다. 이해국 교수는 “중독적 노출이 많아지면 우울증이 심해진다”고 했다.
반면 20대 여성의 우울증 진단 증가를 긍정적 신호로 봐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정신과 진료 문턱이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전에는 ‘정신과에 다닌다’는 부담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우울증 증상이 생기면 (병원에) 도움을 청하는 젊은 여성이 많아진 것”이라며 “적절한 치료를 찾는 젊은 층이 많아졌다는 것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실제 2018년부터 2020년까지는 우울증 환자 중 60대 여성이 가장 많았다. 젊을 때는 스트레스를 참다가 나이가 들어 홧병 등 우울증 증세가 심해진 뒤에야 병원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의미다. 그런데 최근 20대 여성은 정신과 진료를 꺼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심적 고통을 치료했고, 2021년부터 우울증 환자 중 20대 여성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는 분석이 많다.
우울증은 의사 상담을 받고 약물 치료를 병행하면 호전될 가능성이 높은 질병이다. 병원을 찾아 우울증 진단을 받는 젊은 층이 증가한다는 것은 가장 위험한 ‘우울증 방치’ 숫자가 그만큼 줄어들고 있다는 의미여서 긍정적 신호일 수 있다. 전문가들은 “불면증이 나타나거나 무기력함이 2주 이상 지속되는 등 우울감으로 일상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최대한 빨리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했다. 권준수 교수는 “개인이 규칙적인 운동과 명상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며 (정신적) 회복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