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이철원

출생통보제에 이어 보호출산제 법안이 6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국가가 안전한 출산과 신생아 등록을 책임지는 핵심 시스템이 갖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사 이래 우리나라는 출산과 출생 신고를 개인에게 맡겨 두고 있었다. 선진국들이 저출생 시대를 맞아 산모 건강과 아기 탄생, 보육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보호하는 것과 대비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출생과 신고, 보육을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시대의 문이 열린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이철원

국회는 지난 6월 30일 의료 기관이 아기의 출생 사실을 정부에 의무적으로 알리도록 하는 출생통보제 법안을 통과시켰다. 아기의 출생 신고를 부모에게만 맡겨 ‘출생 미등록 아동’이 생기는 걸 막기 위한 취지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 출산 사실을 숨기려는 미혼모 등의 ‘병원 밖 출산’이 증가해 버려지는 아기가 더 많아질 것이란 비판이 나왔다.

이후 89일 만에 산모의 병원 내 익명 출산을 보장하는 보호출산제의 국회 통과로 출생통보제 약점을 보완한 것이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모두 내년 7월부터 시행된다. 전문가들은 “보호출산제 도입으로 태어난 아기의 안전을 국가가 책임지고 관리하는 법적 그물망이 갖춰진 것”이라고 했다.

이날 통과된 보호출산제 법안에 따르면,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보호 출산을 고민하는 여성을 도울 상담 기관을 지정해야 한다. 상담 기관에선 임신부에게 아이를 직접 키울 경우 받을 수 있는 각종 국가 혜택과 친권 포기가 아동에게 미치는 법적·심리적 영향 등을 먼저 설명하게 된다. 이후에도 여성이 보호 출산을 원할 경우 병원을 연결해 산전 검진과 출산을 돕는다. 출산·검사 비용과 기본적인 산후 조리 비용은 국고로 지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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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출산제로 아이가 태어나면 먼저 출생 사실이 병원을 통해 각 지자체로 통보된다. 이후 시·읍·면장이 아기의 출생을 등록한다. 이와 동시에 아기도 상담 기관을 거쳐 지자체에 인계된다. 시·군·구청장은 아동복지법에 따라 아기를 보호한다. 이 과정에서 각 상담 기관은 부모의 인적 사항과 유전적 질환, 보호 출산을 선택한 이유 등이 담긴 보호출산증서를 작성한다. 아기의 출생 등록이 끝나면 이 증서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권리보장원에 영구 보관된다.

아기가 성인이 되거나 미성년자라도 법정 대리인의 동의를 얻으면 친부모의 정보가 담긴 보호출산증서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친부모가 동의하면 보호출산증서의 모든 내용을 공개한다”며 “동의하지 않으면 자녀는 친부모의 인적 사항을 제외한 생모의 보호 출산 선택 이유 등 다른 정보만 열람할 수 있다”고 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여성은 건강하게 아기를 낳을 수 있고, 유기되는 아기들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여성과 아동의 인권이 모두 향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으니 이제는 운영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보호출산제 도입이 늦은 편이다. 프랑스는 82년 전인 1941년 ‘익명출산제’를 도입했다. 독일은 2015년 ‘비밀출산제’를, 오스트리아는 2001년 비슷한 제도를 도입한 바 있다. 독일의 경우 연평균 110명 정도가 비밀출산제를 통해 태어나고 있고, 이 제도 도입 후 매년 영아 유기가 30여 건씩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는 산모의 신상 정보를 전혀 남기지 않는 완전한 익명 출산도 허용한다. 한국의 보호출산제는 부모의 개인 정보를 기록하는 독일식에 가깝다. 양승원 베이비박스 사무국장은 “보호출산제 시행으로 베이비박스(버려진 아기 보호 시설)로 들어오는 아기들이 확연히 줄어들 걸로 본다”며 “5년 전에만 도입됐어도 1000여 명의 아기들이 유기되지 않고 보호를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올해까지 우리나라는 아기의 출생 신고를 부모에게만 맡겨 놓고 있었다. 그러다 태어났지만 출생 신고가 되지 않아 아무런 국가 보호와 혜택을 못 받는 ‘미등록 영유아’가 2236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로 밝혀졌다. 이후 여야(與野)는 지난 6월 출생통보제를 통과시킨 데 이어 3개월 만에 보호출산제를 연이어 통과시켰다. 극한 대립으로 법안 처리가 줄줄이 밀리는 상황에서 이례적인 신속 처리다. 복지부 관계자는 “그만큼 저출생 문제가 심각한다는 방증”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