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 A씨는 작년에만 마약류 의약품 18만2000여 개를 처방받았다. 한 사람이 정말 복용했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분량이라고 한다. 환자 1명이 수만 개의 마약류를 처방받은 경우도 수두룩하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경찰에 수사 의뢰한 사람은 최다 처방자 30명 중 1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용 마약류가 마약 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식품의약품안전처./뉴시스

11일 식약처가 국민의힘 백종헌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 의료용 마약류 최다 처방자 30명 중 1명만 식약처가 수사를 의뢰했다. 아무 조치를 받지 않은 29명 중 A씨는 병원 한 곳에 입원해 245회에 거쳐 마약류 의약품 18만2000여 개를 처방받았다. 1년간 매일 490알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는 옥시코돈(마약성 진통제) 11만3808개와 히드로모르폰·모르핀(마약성 진통제) 각 3만2764개, 알프라졸람(항우울제) 5166개 등을 처방받았다.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는 펜타닐과 클로나제팜(공황장애 치료제), 졸피뎀(수면유도제)도 포함됐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양도 과다한 데다 부작용이 많은 마약성 진통제 4~5종류를 병합한 처방은 비상식적”이라며 “18만정을 정말 한 사람이 다 먹었다면 중독이 아니라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했다.

30대 남성 B씨는 병원 5곳을 돌며 4만5000개 마약류를, 50대 여성 C씨는 병원 한 곳에서 4만개를 처방받았는데도 그냥 넘어갔다. 식약처 측은 “처방 분량은 많지만 환자가 맞고 특이상황은 안 보였다”고 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졸피뎀 등 마약류 16만개를 자신에게 처방한 요양병원 의사 D씨만 경찰 수사를 의뢰했다. 최근 여성과 청소년을 중심으로 마약류 ‘식욕 억제제’ 처방이 크게 늘고 있지만 식약처가 수사 기관에 협조를 요청한 경우는 드물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부 교수는 “환자 한 명이 지나치게 많은 마약류를 받았다면 불법 판매에 중간책 등으로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있는 마약류 식욕 억제제에 관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