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정부가 의과대학의 입학 정원을 1000명 늘리는 방안을 두고 막바지 검토에 들어갔다. 이 안이 시행되면 2006년 이후 17년간 묶여 있던 의대 정원(3058명)이 1년 만에 4000명대로 늘어난다. 정부는 의대 정원을 6000명대로 늘리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의대 입학생 증원에 강한 드라이브를 거는 것은 의료 서비스 수요에 비해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2.1명(한의사 포함 2.5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3.7명을 훨씬 밑돈다.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1000명씩 늘려도, 2035년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한의사 제외 3.0명)는 그해 OECD 평균(4.5명)에 한참 뒤진다.

빠른 고령화로 의료 이용이 늘어나면서 2050년에는 2만2000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보고서도 나왔다. 권정현 KDI 연구위원은 “현재 의대 정원을 늘려도 현장에 인력이 배치되기까지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만큼, 이미 의사 수가 현저히 부족해진 다음에는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 어렵다”며 “의대 정원을 부정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효과적인 의료 자원 배분을 위한 선제적 대응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우리보다 의사가 많은 독일·영국·일본 등도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지속적으로 의대 정원을 늘리고 있다. 한국과 인구 규모가 비슷한 영국은 2020년 의대에서 8639명을 뽑았다.

특히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외과 등 필수 의료 과목에 대한 기피 현상과 함께 ‘응급실 뺑뺑이’, ‘소아과 오픈런’ 등 현상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지역 의대 전문의 부족 현상도 심화되면서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찬성 여론이 거세지고 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달 13~19일 전국 20~60대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의료 현안 설문조사에서 67.8%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했다.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려야 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24.0%(241명)가 ‘1000명 이상’이라고 답했다.

그래픽=박상훈

의사 단체는 의대 정원 대폭 확대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전체 의사 수가 부족한 게 아니라 지역과 과목의 쏠림 현상이 문제라는 것이다. 의대 정원을 늘려도 이들이 전부 수도권의 성형외과·피부과에서 피부 미용 등을 한다면 필수의료 문제와 지방 의료 붕괴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게 의사 단체 주장이다. 하지만 일단 의사 수를 늘려 놓으면 필수의료 분야와 지방에 근무하는 의사도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의대 졸업생들이 피부과·성형외과 등에 몰려 이 시장이 과열되면 자연스레 필수의료 과목에 진출하는 의사가 늘 것이라는 얘기다. 마찬가지로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몰려 경쟁이 심화하면 지방으로 가는 의사가 생겨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의대 정원을 늘릴 경우 초기에는 부작용이 생기고 문제가 해결되는 데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3년 전에도 “의대 정원 확대 반대”- 서울대병원 전공의(오른쪽)가 2020년 8월 31일, 서울대병원 건물에서 당시 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방침에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 /김지호 기자

정부는 의료계 달래기에 나섰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를 발표하면서 과목 및 지역 불균형을 완화할 수 있는 추가 대책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의대 입학 정원의 40%를 차지하는 지역인재 전형 비율을 높이고 지역 거주를 택한 의사들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 필수 의료 분야 수가를 올리는 방안 등 지역과 의료 과목 간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또 정부는 국립대병원에 대한 정원 규모, 총액 인건비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방향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