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박상훈

서울에 몰려 있는 대형 병원들이 앞다퉈 수도권에 대규모 분원(分院)들을 설치하고 있다. 의료계에선 “대형 병원 분원들이 지방 병원의 의료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취약한 지방 의료 인프라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의료계에 따르면 ‘빅 5(국내 가장 큰 종합병원 5곳)′에 속하는 서울아산병원·세브란스병원·서울대병원을 포함해 가천대·경희대·고려대·아주대·인하대·한양대 병원 등 대형 병원 9곳은 2028년까지 수도권에 대형 분원을 총 11개 짓는다. 이 분원들의 총 병상 수는 6600여 개다. 현재 서울·경기·인천에 있는 대형 병원의 병상 수는 약 3만개로 추정된다. 예정대로 분원이 설립된다면 불과 5년 사이에 기존 수도권 병상의 22%가 새로 추가되는 것이다.

의료계에선 “국내 대표 대형 병원의 수도권 분원들이 지방 의료 인력 대부분을 빨아들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대형 분원 11곳엔 의사 3000명, 간호사 8000명 정도가 필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데, 이 인력 대부분이 지방 소재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간호사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정부 관계자는 “수도권은 많은 의사가 선호하는 근무지여서 지방 의사들이 이 분원들로 한꺼번에 옮겨 갈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했다.

지방 병원들은 이미 극심한 의사 인력난을 겪고 있다. 청주의 한 종합병원은 지난 4월 연봉 10억원이란 파격적인 조건으로 심장내과 전문의 3명을 모집했지만 단 한 명도 지원한 의사가 없었다.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연봉 3억6000만원을 내걸고 5차례 공고한 끝에 1년 만인 지난 5월 초에야 내과 전문의를 구해 정상 진료를 시작했다. 강원도 속초의료원도 지난 1월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 중 3명이 퇴사해 응급실을 주 4회 단축 운영해 왔다. 연봉 4억원을 줘서 4월에야 겨우 응급실 의사 3명을 충원했다. 대형 병원들의 분원 설치가 가뜩이나 취약한 지방 의료 시스템을 붕괴 수준으로 몰고 가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이런 분원 설치가 지방 환자의 병원 접근성을 높여 환자에겐 이득이라는 지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