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4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국내 1호 어린이 병원 소화병원이 의사 부족 사태로 인해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진료가 휴진에 돌입한 가운데 아이들이 병원을 지나고 있다./뉴스1

대구의 경북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현재 3명뿐이다. 연차별 정원은 4명씩, 총 16명이지만 지금은 4년 차 3명이 전부다. 최근 3년간 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경북대병원 본원과 칠곡경북대병원의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모두 15명인데 3년 동안 3명만 가르치고 있던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당장 내년 지원자가 없으면 교수 15명이 가르칠 전공의가 한 명도 없게 된다”고 했다.

전공의 4년 차 3명이 전문의 시험 준비(12월 말~2월)에 들어가면 교수들이 평일 응급실 당직은 물론 입원 환자의 열 체크, 수액 놓는 것까지 직접 챙겨야 한다. 지금도 전공의가 퇴근하는 평일 오후 7시가 넘으면 교수들이 입원 환자를 돌보고 있다. 경북대 의대 한 교수는 “전공의가 3명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체력의 한계를 느낀다”며 “올 들어 교수도 1명 그만뒀고, 모두가 그만둬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또 다른 이 대학 교수는 “솔직히 해결책이 안 보인다”고 했다. 교수와 전공의 부족이 만성화하자 2017년 1분기 10일이던 소아청소년과 진료 대기 일수는 지난해 3분기 16일로 늘어났다. 소아과·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의 의사 부족은 서울도 심각하지만, 지방 국립대는 아예 없어지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의사가 없어 첨단 장비 포장지도 뜯지 못하고 방치하는 일도 있다. 경남도립 병원인 마산의료원은 2019년 1억7700만원을 들여 운동 부하 검사기(피로도 확인 기기)와 홀터심전계(부정맥 진단기) 등 장비 3대를 들였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장비들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다고 한다. 비닐도 뜯지 않은 장비도 있다. 장비를 쓸 수 있는 순환기 내과 의사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병원 관계자는 “기본급 2억원에 성과급 별도의 조건으로 의사를 구했지만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고 했다.

지방 의료 거점 역할을 해야 하는 국립대병원이 고사(枯死) 직전이다. 의사 부족으로 지방 의료가 붕괴하면서 환자들은 서울로 몰리고, 환자 부족으로 지방 병원 붕괴가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반복하는 것이다. 남우동 강원대병원장은 17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강원대병원도 수도권으로 의료진 이탈이 심각하고, 의료진 확보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어린이병원의 경우 외래 환자 진료 시 1인당 9만원, 입원 환자는 1인당 39만원꼴로 적자가 발생한다”고 했다. 지방 환자들이 수도권 병원으로 몰리면서 지방 병원의 수익성도 날로 악화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픽=이철원

현 정부는 지방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 지방 의료를 살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빨리 손쓰지 않으면 지역 거점인 지방 국립대병원부터 무너져 지방 의료 인프라가 초토화될 것”이라고 했다.

지방 병원에 의사가 없다 보니 중징계를 받은 의사를 다시 현장에 투입하는 일도 일어난다. 전북대병원 A 교수는 작년 9월 부서 회식을 하던 중 전공의를 소주병으로 때려 징계를 받았다. 병원으로부터 직무정지 6개월, 대학으로부터 의사 겸직 해제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대학과 병원 측은 지난 4월 해당 교수의 징계를 풀고 다시 의료 현장에 투입했다. 병원 관계자는 “A 교수의 전공이 필수 진료 분야이다 보니 전문의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고 했다. 현재 A 교수와 그로부터 폭행을 당한 전공의는 같은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공의는 환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며 병원 진료의 손발 역할을 한다. 국립대병원의 전공의 인력 부족은 이미 한계 상황이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방 국립대병원은 전공의가 정원의 70~80% 정도를 차지한다. 그런데 전북대병원의 경우 전공의 정원이 180명이지만 결원이 37명(21%)이나 된다. 소아청년과의 경우 4명 모집에 1명만 지원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전공의 16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3명이 한다고 한다. 전공의들이 수도권 병원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의 한 의대 본과 3학년 권모씨는 “다들 서울 유명 병원에서 수련해야 나중에 더 좋은 병원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대구에는 전공의 선배들이 없어 업무량이 너무 많은 것도 부담”이라고 했다. 지방 의사들이 수도권으로 이탈하면서 작년 기준 국립대병원 의사들의 퇴사율은 제주대병원 11.5%, 전북대병원 10%로 대형 병원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안영근 전남대병원장은 이날 국정감사에서 “40년 이상 된 노후화된 병원 시설 등으로 인해 지역 환자들의 수도권 유출이 심화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방 환자들이 없다 보니 지방 의대생들이 수술 등 수련을 할 기회가 적어 결과적으로 수도권 의대 학생들에 비해 경험과 역량이 뒤처지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했다.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인턴은 “지방에 남으면 (수련이 아니라) 교수님들 심부름만 하다가 전문의 자격도 못 따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삼성서울병원 등 서울의 대형 병원엔 하루 1만 명 이상의 외래 환자들이 몰려들며 북새통을 이루지만 지방 병원은 줄줄이 폐업을 하고 있다.

울산 남구 삼산동에 위치한 프라우메디병원이 지난달부터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1991년 문을 연 이 병원은 작년 기준 울산에서 출생한 전체 신생아 5399명 중 약 27%(1440명)를 받은 울산의 대표 산부인과 중 하나였지만 문을 닫았다. 분만 수요가 줄고, 의료 인력을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곳 병원장은 홈페이지를 통해 “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의 이직으로 인해 의료 인력 수급이 어려워 부득이하게 휴업하게 됐다”고 공지했다. 병원의 휴업 소식에 한 산모는 “첫째 아이를 이곳에서 낳고, 둘째 아이를 임신해 이 병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해서 당황했다”고 했다. 울산의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분만 특성상 의료진이 24시간 대기를 해야 하는데 의사들이 다들 기피한다”며 “의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경북 북부 지역 유일의 공공 의료 기관인 안동의료원 소아청소년과는 2020년 12월부터, 포항의료원 소아청소년과는 2020년 6월부터 휴진 상태다. 코로나 때 전문의가 그만둔 이후 지금까지 의사를 구하지 못해서다. 경북도 관계자는 “오려는 전문의가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