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일 복지부 1차관이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민연금심의위원회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현재 9%인 보험료율의 인상 필요성을 강조한 국민연금 개혁안을 발표했다. 저출산·고령화의 위기 속에서 연금 재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료율 인상 수준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내년 5월까지 활동하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진행할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구체화한다는 입장이다. 생애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비율을 뜻하는 소득대체율 조정도 국회 연금개혁특위의 공론화를 통해 의견을 더 수렴하고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구체적인 숫자를 제시하지 않았다. 연금 개혁이 윤석열 정부의 3대 개혁 과제 중 하나인 만큼 모수 개혁이 나올 것이라는 그동안의 예상과 다르게, 이번 연금 개혁 정부안은 방향성만 언급된 것이다.

27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심의위원회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심의했다고 밝혔다. 이번 종합운영계획 정부안에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연금 받는 나이 등을 어떻게 조정할지 구체적인 모수 개혁에 대한 내용은 없고 보험료율 인상과 소득대체율 의견 수렴 필요 등 방향성만 제시됐다. 복지부 관계자는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 조정 수준에 대한 의견이 다양해, 앞으로 있을 공론화 과정에서 폭넓은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에 집중했다”면서 “정부가 구체적인 숫자를 담은 개혁안을 제시하면 국회 공론화 과정에서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저출산·고령화로 기금 소진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는 만큼 연금의 점진적인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과 비교해도 보험료율 인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21년 OECD 가입국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42.2%로, 올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인 42.5%와 비슷한 반면, OECD 가입국의 평균 보험료율은 18.2%로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9%)의 2배가 넘는다. 이런 상황들을 살폈을 때 적정 보험료율을 검토해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구체적인 숫자는 공론화를 통해 정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세대별 형평성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연령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연금 받는 나이는 고령자 계속 고용 여건이 성숙된 이후에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60세인 법정 정년 연령을 늘리지 않고 연금 수급 연령만 상향 조정하면, 은퇴 이후 소득 공백이 발생하는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연금의 노후 보장 기능을 담당하는 소득대체율도 이번 정부안에선 구체적인 숫자가 나오지 않았다. 복지부는 재정계산위원회 보고서와 국민 의견을 고려했을 때 논의가 더 필요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정부 개혁안의 밑그림이 되는 연금 개혁 방안들을 제시하는 재정계산위는 재정 안정론 측과 보장성 강화론 측 위원들 간 소득대체율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서 적정한 소득대체율 수준을 제시하지 못했다. 또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보험료율 인상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어 미래 세대에 부담이 되는 등의 이유로 국민 여론도 소득대체율 인상과 유지(혹은 인하)로 크게 갈리고 있어 의견 수렴이 더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대신 정부는 소득대체율 이외에 노후 소득 보장 기능을 강화할 다른 방안들을 제시했다. 우선 노령연금 감액 제도 폐지를 추진한다. 경제 활동을 하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특정 소득을 초과하는 업무에 종사할 경우, 최대 5년간 초과 소득 금액별로 일정 연금액을 감액(최대 50%)했는데 이를 폐지한다는 것이다. 또 유족연금도 가입 기간에 따라 기본연금액의40~60%를 받는 것을 기본연금액의 50~60%로 상향한다.

세대 형평성 제고를 위해서는 둘째 자녀를 출산하면 연금 가입 기간을 추가 인정해주는 출산 크레딧을 첫째 아이부터 12개월씩 인정하는 것을 추진한다. 군 복무 기간의 6개월만 인정해주던 군 복무 크레딧도 군 복무 기간 전체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확대 추진한다.

나아가 정부는 기초연금을 통한 노후 소득 보장 기능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기초연금은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노인들이 받는 것으로, 기초연금의 기준연금액은 현재 32만3180원이다.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인상(40만원)해 노인 빈곤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 역시 구체적인 인상 시기와 방법은 국민연금 개혁과 연계해 나가겠다며 밝히지 않았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국회 연금개혁특위와 협력해 구체적인 개혁안을 만들겠다”며 “정부는 국회에서 사회적 논의가 충실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연금법에 따라 연금의 지속 가능성과 신뢰도 제고를 위해 5년마다 연금 재정 계산을 실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험료 조정 및 기금 운영 계획 등을 포함한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을 만들어 국회에 10월 말까지 제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