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가 촌각에 달린 환자를 구하는 의사를 ‘바이털(생명) 의사’라고 한다.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밤을 새우며 환자를 보는 바이털 의사들을 소개한다.
윤영남(52)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교수는 연구실 책상 서랍에서 환자가 보낸 편지 한 통을 꺼냈다. 편지엔 ‘2017년 2월 8일은 교수님의 생신이자, 당신이 또 한 생명을 탄생시켜 새 삶을 살게 하신 날입니다’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윤 교수는 그날 심부전이 심한 박모씨의 몸에 새 심장을 심는 이식수술을 했다. 박씨의 두 형도 윤 교수에게 심장 이식수술을 받았다. 윤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삼 형제처럼 수술 후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환자들의 편지를 받으면 의사가 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흉부외과 중에서도 생명과 직결되는 심장 및 주변 혈관 수술을 하는 심장혈관외과 교수다. 그는 “의사는 서비스업이라고 하시는 분도 있지만 그 본령은 열심히 배운 의술을 베풀어 환자를 살리는 것”이라며 “의사들이 밤샘 응급 수술을 하는 건 돈을 벌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환자가 죽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장혈관외과는 중환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렇다. 제 환자 중 30% 정도가 생사를 오가는 중환자다.”
-수술을 하루에 얼마나 하나.
“계획된 수술은 하루 1~2번 한다. 예정에 없는 응급 수술도 일주일에 1번 정도 한다. 젊은 교수들은 저보다 2배 정도 수술을 많이 한다.”
-어떤 환자들이 많이 오나.
“온 몸에 피를 보내는 대동맥 안쪽이 찢어진 대동맥 박리 환자나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막히는 급성 심근경색 환자 등이다. 응급 수술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왜 응급 수술이 필요한가.
“대동맥 질환은 놔두면 대동맥이 파열될 수 있다. 그러면 거의 살리기가 어렵다. 대동맥이 터지면 몇 분 안에 피가 혈관 밖으로 다 빠져나가 사망한다. 급성 심근경색도 부정맥(심장박동 불규칙)으로 급사할 수 있다. 의사의 판단 하나하나가 생명과 직결된다.”
-수술 부담이 클 것 같다.
“고령화 영향도 크다. 10년 전만 해도 심장 수술 평균 연령이 60대 초반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거의 70세다. 기저 질환이 많은 상태의 환자를 수술해야 하니 부담이 더 커진다. 한 번 수술하고 나면 진이 빠질 때가 많다.”
-밤이나 주말에도 응급 호출을 받고 나오나.
“밤에는 한 달에 2번 정도 나온다. 제 밑의 조교수와 부교수들은 수시로 불려 나온다. 주말에도 응급 수술이 잡힌다.”
-심장혈관외과는 밤샘 수술이 많다고 하는데.
“응급 수술과 심장 이식수술 때문이다. 기증자의 몸에서 심장을 꺼내는 수술은 각 병원의 정규 수술이 끝나고 늦은 오후부터 진행된다. 이식할 심장이 병원에 도착하는 시각은 이르면 밤 9시, 보통은 밤 11~12시다. 심장 이식에 6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밤을 꼬박 새워 이식수술을 한다. 1~2주에 한 번씩 이 수술을 한다.”
-특히 힘든 수술이 있나.
“혈액 응고 장애가 있는 환자의 수술이 특히 어렵다. 심장 이식수술 때 환자의 기존 심장을 떼내고 새 심장을 붙이는 그 자체는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환자의 피부와 흉골, 그 주변 조직에서 출혈이 멎지 않아 사망하는 경우가 10여 년 전만 해도 많았다. 당시엔 피가 멎는 조짐이 보일 때까지 수술 부위를 닫지 않고 지켜봐야 했는데, 그 시간이 3시간 이상 된 적도 있다. 그땐 정말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의사로서 무력감도 느꼈다.”
-가장 힘든 게 수술인가.
“수술보다는 디시즌(decision·결정)이 더 어렵고 힘들다. 수술 기법은 많이 발전했다.”
-왜 그런가.
“모든 중증 심장병 환자들과 그 가족에게 심장이식은 유일한 희망이다. 그러나 공급이 워낙 적기 때문에 ‘이식해서 얼마나 좋아질까’를 따질 수밖에 없다. 심장은 물론 다른 장기의 기능까지 떨어져 의식도 없는 중환자를 건너뛰고 좀 더 예후가 좋을 것으로 분석되는 환자에게 이식하기로 결정하는 건 냉정하고 비인간적인 면까지 있다. 저도 인간인지라 이 결정 과정이 괴롭다.”
-도망가고 싶었을 땐 없었나.
“도망까진 생각한 적 없다(웃음). 수술이 어렵고, 수술 시간도 최소 3시간 걸리는 이 과를 왜 선택했을까 살짝 후회할 땐 있었다.”
-수술 전 징크스 같은 게 있나.
“수술할 땐 절대 사담은 안 한다. 집중력이 분산되고 수술실 분위기도 해이해진다.”
-보람을 느낄 때가 많은가.
“많다. 특히 수술을 받아 상태가 좋아진 환자에게 ‘이제는 외래진료에서 뵙겠다’고 말할 때가 가장 기분이 좋고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몇 명의 환자를 수술했나.
“일상이라 세어보지 않았다.”
-기억나는 환자가 있나.
“2015년과 2017년 심장 이식수술을 받고 잘 살고 있는 박씨 삼 형제가 생각이 난다. 이분들은 이후 코로나 때 세브란스병원에 방호복 1000벌과 마스크 5만장을 기부하기도 했다. 지금도 감사 편지를 보내온다. 가족이 모이면 항상 제 얘기를 한다더라.”
윤 교수의 연구실 책상 위에는 어른 두 손바닥만 한 판화 작품이 놓여 있었다. ‘심장들(hearts)’이란 제목의 이 판화 안엔 빨간·파란색의 크고 작은 하트 그림이 빼곡히 박혀 있다. 2013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실려온 40대 남성이 윤 교수에게 수술을 받고 회복한 뒤 보낸 작품이다. 그는 “미대를 나온 환자였는데, 자기가 유명 작가가 돼 그림 가치를 올려주겠다고 하더라(웃음).”
학생 환자에겐 밤에 수학 가르치기도
-왜 힘든 심장혈관외과를 전공했나.
“의대 본과 2학년 때 외할아버지가 지방에서 급성 심근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또 의대 공부를 하면서 바이털(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진정한 의사라고 생각했다. 결정적으로는 수련의 때 한 흉부외과 교수님이 수술실에서 ‘자네 이리 와서 심장을 잡아보라’고 했다. 따뜻하고 힘차게 뛰는 심장을 만져보고 ‘이거다’ 싶었다.”
-요즘 심장혈관외과는 대표적 기피 부서다.
“내 시간·소득이 보장되는 걸 찾는 MZ세대와 수술도 어렵고 자기 시간도 별로 없는 심장혈관외과는 맞지 않는 구석이 있다. 그래도 하고 싶어서 오는 후배들을 보면 기특하다.”
-전공의·전문의 생활은 어땠나.
“전공의 때는 사람 한번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실제 살아서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고 보람을 많이 느꼈다. 애정도 많아서 한 학생 환자에겐 밤에 수학 정석을 가르치기도 했다.”
-가족에게 미안한 게 있나.
“펠로(전임의) 때는 논문 준비에 환자 케어까지 해야 해서 이틀에 한 번씩 집에 들어갔다. 자녀들 크는 걸 못 봤다. 한 번은 모처럼 가족끼리 에버랜드로 놀러갔는데 표를 끊자마자 병원에서 응급 콜이 와서 바로 돌아온 기억이 있다.”
-의사의 본령은 뭐라고 생각하나.
“열심히 익힌 의술을 베풀어 환자를 살리고 사회에 봉사하는 것이다.”
-젊은 의사들은 힘든 필수 의료 대신 미용 등으로 몰리고 있다.
“최고로 우수한 인재들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미용으로 몰리는 건 사회적 손실이다. 의학 연구나 고난도 수술은 그럼 누가 하나. 의사는 사회적 책무가 있다. 정부도 필수 의료를 하고 싶어 하는 의사는 할 수 있게 수가(의료 서비스 가격)를 올리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선 법적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
-심장혈관외과만의 매력은 무엇인가.
“죽어가는 심장을 수술해서 내가 환자를 살렸다는 기분을 실감할 수 있는 독보적 바이털 부서다. 복잡한 수술을 완벽하게 해냈다는 성취감도 정말 크다.”
☞윤영남 교수
1996년 연세대 의과대를 졸업했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마치고 2005년부터 2년간 펠로(전임의)로 근무했다. 2007년부터 올해까지 16년간 세브란스병원 심장혈관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심부전외과학회 회장과 세브란스병원 진료혁신부원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