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가 촌각에 달린 환자를 구하는 의사를 ‘바이털(생명) 의사’라고 한다. 필수 의료 분야 의사들이다. ‘생명을 살린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밤을 새우며 환자를 보는 바이털 의사들을 소개한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김영환 외상센터장은 각종 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들을 살리는 현장의 지휘관이다. 그는 "생과 사를 오가던 환자가 재활을 거쳐 처음 걸을 때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김지호 기자

서울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에는 트럭에 깔리거나 공사장에서 추락하는 등 사고로 사지와 뼈, 장기에 복합적 손상을 입은 환자들이 매일 실려온다. 장기 일부가 배 밖으로 나온 상태이거나 팔다리가 절단된 환자들도 있다. 사고 후 1시간(골든 아워) 안에 치료하지 못하면 목숨이 위태롭다.

김영환 외상센터장(47)은 이런 환자들을 살리기 위한 사투 현장을 지휘한다. 김 센터장은 “피를 철철 흘리며 들어왔던 환자가 우리 팀 치료를 받고 하루하루 좋아지는 모습을 볼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쳐 몇 달간 누워만 있던 환자가 휠체어에 앉는 순간을 볼 때 이 일(중증 외상)을 택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는 “현재 중증 외상 분야는 몇 명 안 되는 의료진이 힘겹게 떠받치는 구조”라고 했다.

-외상센터에는 어떤 환자들이 오나.

“교통사고나 추락 사고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다친 ‘다발성 중증 외상 환자’가 많다. 팔다리와 골반, 갈비뼈, 척추뼈가 부러지고 기흉(폐에 구멍)과 혈흉(폐에 혈액 고임) 등 장기 손상까지 동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상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생업을 위해 밤에 운전하는 트럭 운전사나 배달 기사, 공사 현장 일용직 노동자, 건물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하려는 소외 계층 등 사회적 약자들이 특히 외상에 취약하다. 사고 예방이 최선이겠지만 발생했을 때 외상센터는 ‘최후의 안전망’이다.”

-외상센터와 응급실의 차이는.

“새벽에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며 데굴데굴 구른다면 응급실로 가면 된다.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차량 파편이 튀어 복부에 출혈이 있다면 외상센터로 실려온다.”

-외상센터 근무를 결심한 계기는.

“외과 레지던트를 마치고 세부 전문의 과정을 고민하던 때, 교수님께서 위중한 환자를 치료하는 모습을 봤다. 멋졌다. 중환자 의학 전문의 과정을 밟기 시작했고, 외과 전문의로 중환자 의학을 공부하다 보니 중증 외상에도 관심이 생겼다. 그 무렵 국내 곳곳에 외상센터가 설립됐고, 외상 분야는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중환자실 입구에 걸려 있는 그림. 김미나 외상 전담 전문의 작품이다. 동틀 무렵 119 연락을 받고 중증 외상 환자가 무사히 도착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외상센터 의료진 모습을 담았다. 김영환 센터장은 "제발 살아서 도착하길 기원하는 팀원들 마음이 느껴져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했다. /김영환 센터장

-외상센터의 매력은.

“죽음의 문턱을 넘기 직전인 환자를 살리는 일의 보람은 엄청나다. 생과 사를 오가던 환자가 몇 달 동안 병상에 누워만 있다가 처음으로 휠체어를 탈 때, 그리고 재활을 거쳐 처음 걸을 땐 감격스럽다.”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나.

“올여름 결혼을 앞두고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판정을 받은 여성이 생각난다. 꿈이 많았던 그녀를 너무 이른 나이에 보내줘야 하는 가족들의 슬픔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딸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작은 임종실을 마련해줬다. 그랬더니 가족들이 진심이 담긴 감사 인사를 했다. 정말 마음이 짠했다. 의사가 모든 환자를 살릴 수는 없어도 환자와 보호자의 상황에 공감하며 늘 ‘위로’는 줄 수 있다고 믿는다.”

-외상센터의 하루는.

“오전에 출근해 회진하며 입원 환자들의 상태를 확인한다. 입원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달려간다. 동시에 언제 올지 모르는 중증 외상 환자들을 위해 대기한다. 그러다 119 구급대의 연락이 오면 외과뿐 아니라 신경외과·정형외과·흉부외과 전담 전문의들이 ‘외상 소생 구역’으로 뛰어가 환자를 기다린다. 환자가 오면 기도를 확보하고, 목에 부목을 고정하고, 출혈을 잡는 처치를 일사불란하게 한다. 응급수술도 바로 한다.”

-외상센터가 하루에 보는 환자 수는.

“구급차에 실려오는 중증 외상 환자는 하루 2~6명 정도다. 입원 치료 환자는 약 60명이다.”

-환자 1명을 위해 여러 전문의가 붙나.

“그렇다. 외상은 곧 팀워크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친 환자는 의사 1명의 힘으로 살릴 수 없다. 팀원들이 소통하고 협력하는 게 핵심이다.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는 외과 전문의 4명(김 센터장 포함), 신경외과·정형외과·흉부외과 전문의 각 1명 등 전담 전문의가 총 7명 있다.”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인력 부족이다. 외과는 진작에 기피과가 됐지만, 외상은 그중에서도 특히 인기가 없다. 피부 미용 등에 비해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당직은 많고, 소송 위험 부담까지 있으니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정부가 의대 증원 카드를 내놨는데.

“의대 정원을 증원한다고 해서 특정 과로 가라고 강제할 수는 없지 않은가. 어차피 외상에 사명감을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외상학에 관심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외상센터는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들이 오는 곳이다. 그들을 살리고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과정은 의사로서 큰 동기 부여다. 외상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재미를 느낀다면 외상센터에 오는 걸 망설이지 않기를 바란다. 아침에 일어나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부터가 곧 성공 아니겠나.”

국립중앙의료원은 지난 7월 보건복지부가 제시한 요건들을 채워 ‘서울 권역외상센터’가 됐다. 이에 따라 수가 등에 대해 복지부 지원을 추가로 받게 된다. 김 센터장은 “지역 유일 권역외상센터로서 서울시 외상 환자들을 위해 제대로 작동하는 외상센터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고 했다.

-서울 권역외상센터로 개소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들었다.

“국립중앙의료원은 2013년부터 외상센터를 키우기 위해 노력했으나 인력과 돈 문제로 여러번 좌절했다. 내가 2017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에서 근무를 시작했는데, 그때 함께 일하던 전문의 5명이 2018년에 집단 사직서를 냈다. 전문의가 1명밖에 없으니 외상센터는 문을 닫았다. 2019년 3월부터 1년간 다시 외상팀을 꾸려 운영했으나 코로나로 또 한 번 어려움을 겪었다. 그 이후 복지부와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2020년 말부터 차근차근 인력을 모으고 리모델링을 거친 뒤 서울 권역외상센터로 문을 열 수 있었다.”

-중증 외상 분야에서도 서울과 지방의 의료 격차가 있나.

“서울이라고 상황이 나은 것도 아니다. 서울의 예방 가능 사망률(적절한 치료를 받았으면 생존했을 수 있는 환자의 비율)은 2019년 기준 20% 정도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전국 평균은 15% 정도다. 서울의 ‘빅5′ 병원 등 대형 병원들은 이미 암 환자 등으로 포화 상태라 응급 외상 환자를 받을 인력도, 공간도 없다. 의료 인력의 대기 비용과 다른 질환을 치료해 벌 수 있는 수익을 생각하면 아직 외상센터가 병원 집행부의 환영을 받기는 어렵다. 공공 병원으로서 국립중앙의료원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만들고 싶은 외상센터의 모습은.

“서울 권역외상센터를 넘어 최고의 ‘재난 전문 병원’을 만들고 싶다. 빌딩 화재로 화상을 입고 추락한 환자가 생겼을 경우 현재 서울에선 이 환자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명확한 체계가 없다. 이걸 고민하는 동안 환자는 죽는다. 외상·화상·감염병 등 어떤 응급 환자가 오더라도 환자를 수용하고 최종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 필요하다. 공공 병원인 국립중앙의료원이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영환 외상센터장

2002년 가톨릭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아산병원에서 수련 과정을 거친 외과 전문의다. 아산병원에서 2010년부터 3년간 전임의(펠로)로 근무하며 외상 및 중환자 의학, 간담췌외과학 등 분야를 공부했다. 이후 아주대병원 외상센터 임상 조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국립중앙의료원 외상센터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