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오전 9시 40분 대구 소방 안전 본부 119 구급 상황 관리 센터. 상황 관리 요원 컴퓨터 화면에 ‘병원 선정 요청 발생’이라는 문구가 적힌 붉은색 알림 창이 떴다. 곧바로 대구 동구 가정집에 출동한 구급대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상황 관리 요원 헤드셋을 통해 들렸다. “71세 여성, 심정지 상태. 밥을 두 숟갈 정도 먹다가 갑자기 숨을 안 쉬었다고 합니다.” 무전을 받은 이경환(41) 상황 관리 요원이 환자 병력(病歷)과 현장에서 병원까지 거리 등을 재빨리 확인한 뒤 칠곡경북대병원 응급실에 전화를 걸었다. “동구 대림동 심정지 환자. 폐암 말기. 15분 후 도착 예정”이라고 짤막하게 통보했다. 병원에선 곧바로 환자 받을 준비에 돌입했다.
이날 오전 9시부터 24시간 동안 이곳 119 구급 상황 관리 센터가 병원을 선정해 통보한 초(超)응급 환자는 9명. 이송 병원을 정하는 데 대부분 2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삶과 죽음을 오가는 환자를 구급차에 싣고 119 대원들이 전화를 돌려 환자를 받아줄 병원을 찾을 때까지 ‘응급실 뺑뺑이’를 돌아야 했던 몇 달 전과는 확 달라진 모습이다.
지난 3월 대구 북구 건물에서 추락한 10대 청소년이 2시간 넘게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을 찾아 떠돌다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대구 지역사회는 큰 충격을 받았다. 대구시 보건 당국과 소방 안전 본부, 6개 대형 병원은 이 같은 응급 환자가 더는 없도록 ‘응급 환자 이송·수용 지침’을 만들어 지난 7월 24일부터 시행했다. 급성 심정지나 기도 폐쇄, 의식불명 등으로 몇 분 안에 병원에 도착하지 않으면 위독한 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할 수 있는 초응급 환자는 119 구급 상황 관리 센터가 환자 이송 병원을 선정해 통보하는 방식이다. 병원은 이를 거부할 수 없다. 류현욱 경북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초응급 환자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이송 병원으로 선정된 응급실이 일단 환자를 수용해 상태를 진단하고 응급처치를 진행한다는 의미”라며 “환자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뒤 필요한 수술과 진료가 가능한 병원으로 옮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1~2시간 이내 위독한 상태를 맞을 수 있는 중증 응급 환자는 119 구급 상황 관리 센터가 병원 2곳에 미리 연락해 환자를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이송 병원을 선정한다. 대구 소방 안전 본부 관계자는 “중증, 중등증 응급 환자도 계속해서 이송 병원이 정해지지 않으면 초응급 환자처럼 센터가 선정해 통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지침을 시행한 뒤 대구에선 응급 환자가 병원에 도착하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소방청에 따르면 지난 8~10월 대구의 119 구급대가 초응급 환자와 중증 응급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10분 넘게 걸린 경우는 하루 평균 17.2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23.2명이던 지난 4~7월에 비해 26% 줄어든 것이다.
대구 동부 소방서 김지혜(40) 소방위는 “예전에는 환자 상태와 병력, 보호자 동행 여부 등을 일일이 병원에 설명해야 했지만, 지금은 센터가 가야 할 병원을 곧바로 알려줘 응급처치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환자 생명을 결정할 수 있는 10~20분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9월부터 지역 맞춤형 응급 환자 이송 지침 마련을 위한 연구 용역을 진행 중이다. 내년 상반기 중 관련 지침을 지자체에 배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