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구급차. /소방청 제공

최근 서울의 한 소방서 구급대는 “상가 계단에서 넘어져 구르는 바람에 크게 다쳤는데 당장 와달라”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했다. 도착해 보니 신고자 A씨는 만취 상태였다. 손에 난 상처는 연고만 바르면 되는 단순 찰과상이었다. A씨는 “병원 응급실까진 안 가도 될 것 같으니 OO역 근처까지만 태워달라”고 했다. 구급대는 A씨를 택시에 태워 보내기까지 10분 넘게 실랑이를 해야 했다.

A씨처럼 응급하지 않은 경증 환자 등으로 인해 119 구급대가 출동하는 일이 늘고 있다. 119에 전화해 “(취해서) 머리가 깨질 것같이 아프니 지금 좀 와달라” “보일러가 고장 나 오한이 왔으니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들 때문에 119 업무 부담이 늘어나 정작 필요한 곳에 인력이 투입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에 의료계 일각에선 ‘구급차를 유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소방청에 따르면 2022년 전국 119 구급대 출동(약 356만건) 중 환자를 병원에 이송하지 않고 그냥 복귀한 경우가 35.4%(약 126만건)에 달했다. 중간에 신고를 취소한 사례가 39만건으로 가장 많았고, 현장에 도착해보니 환자가 없었던 경우도 10만건 가까이 됐다. 경증이라서 구급대가 응급처치만 하고 돌아온 경우가 약 16만건이었다. 술에 취한 사람 등 애초 치료가 필요 없어서 병원으로 이송하지 않은 경우도 20만건이 넘었다. 119가 병원에 이송한 환자 중에서도 ‘전혀 응급하지 않은 상태’로 분류된 환자가 2만4000명이 넘었다.

그래픽=백형선

현행법에 따르면 긴급하지 않은 신고는 출동을 거절할 수 있다. 하지만 통화 내용만으로 응급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급대는 대부분 현장에 나갈 수밖에 없다.

일본에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한 지자체가 ‘구급차 유료화’ 대책을 내놨다. 일본 미에현에 있는 인구 16만 소도시 마쓰사카(松阪)시는 “경증·비응급 환자가 구급차를 이용하는 사례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면서 올 6월부터 ‘구급차를 이용하고 입원은 하지 않는 환자’에게 7700엔(약 7만원)을 징수하기로 했다.

다만 ‘중증 환자를 수용하는 지역 2차 의료 기관 세 곳으로 이송됐는데 입원하지 않은 경우’에만 비용을 청구하기로 했다. 또 이송 후 이들 기관에 입원하지 않더라도, 주치의 의뢰서가 있는 경우 등은 비용을 안 받는다. 일본도 2022년 구급 출동 건수 약 723만건, 이송 환자 수 약 622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이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택가에서 이송해야 할 환자를 구급차에 옮긴 뒤 출발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구급차 유료화’를 놓고 국내에서는 찬반이 엇갈린다. 의료계에선 “미국·프랑스 등 선진국도 구급차는 유료이고, 이를 통해 국내 대형 병원 응급실 과밀화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며 찬성하는 목소리가 많다. 하지만 정작 구급대원들 사이에선 “도입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 반응도 나온다. 환자나 신고자가 중증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고, 결국 중증인지 분류하고 비용을 청구하는 문제 때문에 신고자와 구급대 간 실랑이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소방 당국 관계자는 “중증도를 분류하는 책임이 커지고, 경우에 따라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가 그 책임을 떠안을 수 있어 구급 활동 자체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유료화하면 의료 서비스에 취약한 저소득층이 실제 위험한 상황에서 구급차 부르길 주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