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 규탄 포스터가 붙어 있다. 이날 정부는 의대 정원을 2000명 확대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 단체는 강하게 반발했다./남강호 기자

대한의사협회(의협)와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등 의사 단체는 6일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 발표에 강하게 반발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의대 2000명 증원 상태가 이어지면 국내 의사 수(한의사 포함)는 2025년 14만5875명에서 2040년 21만3456명으로 46% 늘어난다. 같은 기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도 2.84명에서 4.25명으로 올라간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이날 “2049년이면 우리나라 1000명당 의사 수가 5.45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5.41명을 넘어서고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것”이라며 “의료 현장에 AI(인공지능)가 들어오는 것까지 고려하면 ‘의사 과잉’은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OECD 자료를 보면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6명으로, OECD 평균인 3.7명보다 1.1명 적다. 그러나 의사 단체 관계자는 “의대 규모를 한 번 키워 놓으면 다시 줄이기가 매우 어렵다”며 “현재 3000여 명인 의대 신입생을 한꺼번에 5000여 명으로 늘리면 ‘과잉’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의사 수가 당장은 부족해 보이지만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의료 정책은 10년 이후까지 내다보고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픽=백형선

◇의사 단체 “정원 늘려도 소아과·산부인과 안 간다”

의료계는 “의대 정원을 크게 늘려도 외과·소아과·산부인과 같은 필수 의료나 지역 의료 분야로 의사들이 (증원 비율만큼) 가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의협 관계자는 “초저출생으로 신생아가 급감하고 있는데 어떤 의대생이 산부인과와 소아과로 가려 하겠느냐”고 했다. 1970년대 초만 해도 한 해 100만명이 태어났지만 최근엔 24만명 선도 무너졌다. 이 관계자는 “인구가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지방은 소멸 위기”라며 “사람 없는 곳에 가려는 의사는 없다”고 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면 ‘낙수 효과’로 필수·지역 의료 분야로 가는 의사도 늘 것으로 기대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란 주장이다.

의사 단체는 의사 수가 늘면 의료 행위 자체가 늘어 건강보험료를 포함한 국민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고도 주장한다. 의사 2000명을 더 뽑으면 요양 급여 비용이 약 35조원 증가해 국민 1인당 월 6만원의 의료비를 더 부담해야 한다는 추산도 제시했다.

6일 서울 용산구에 있는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이필수 의협 회장이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방침을 비판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남강호 기자

◇”의학 교육 질 떨어져...해부용 시체 구하기도 어려울 것”

의료계는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지금 지방 의대는 해부학·생리학 등 기초 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의대생 수를 단번에 늘리면 현장 실습 기회를 주기도 어렵다고 한다. 한 대학병원 교수는 “1980년대 대학 정원을 확 늘렸을 때 의대는 해부용 시체를 확보하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며 “의대는 실습이 중요한데 갑자기 2000명을 늘리면 어떻게 가르치느냐”고 했다.

지난달 의대학장과 의학전문대학원장 등으로 구성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의학 교육 질 저하를 막고 교육 현장의 혼란을 막으려면 2025학년도 증원 규모는 총 350명 수준이 적절하다”고 했다. 정부와 협의 과정에서 의료계 내부에선 “최대 가능한 증원 인원은 500명 정도”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안덕선 고려대 의대 명예교수는 “현재 전국 40개 의대 중에도 교수 확보 등 운영이 어려운 곳들이 있다”며 “정부가 일선 의료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하면 곤란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