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인천 옹진군 백령도의 유일한 병원인 ‘백령병원’에서 이 섬의 유일한 산부인과 전문의인 오혜숙(73) 진료과장이 환자를 진찰하고 있다. /백령병원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유일한 병원 ‘백령병원’에 지난달 70대 노의사가 부임했다. 백령병원 진료과장을 맡은 산부인과 전문의 오혜숙(73)씨다. 오씨는 백령도와 아무런 개인적인 인연이 없었지만, 백령도에 임신부를 돌볼 수 있는 의사가 한 사람도 없어 백령병원이 산부인과 전문의를 찾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근무를 자청했다. 오씨는 “응급 분만이 지연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했다.

백령도와 인근 대청도·소청도에는 군 장병을 제외하고 주민 6500여 명이 살고 있지만, 병원은 인천시의료원의 분원인 백령병원 1곳뿐이다. 이 외에는 간단한 진료와 처치만 가능한 보건지소가 백령도와 대청도에 각각 1곳, 소청도에 보건진료소가 1곳 있다. 2001년 문을 연 백령병원의 산부인과 전문의 자리는 지난 20년 동안 군 복무를 대신해서 오는 공중보건의가 채워 왔다. 2015년에 한번 자원자가 온 적이 있지만 1년 만에 돌아갔다. 2021년 4월 근무하던 공보의가 근무지 변경을 신청해 백령도를 떠난 뒤엔 공보의마저 없어졌다.

이때부터 지난해 말까지 2년 8개월간 백령·대청·소청도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한 사람도 없었고, 이 기간에 임신부 27명이 일상적인 검진 한번 받으러 뱃길로 왕복 10시간 걸리는 인천 병원을 오가야 했다. 출산도 모두 육지에서 이뤄졌다. 지난해 7월엔 응급 산모가 닥터헬기를 타고 인천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다.

그동안 백령병원은 절박하게 의사를 찾았다. 인천시의사회는 물론 과거 백령병원에서 공보의로 근무했던 모든 의사에게 전화를 돌려 추천을 부탁했다. 인천시도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산부인과 전문의 연봉을 1억5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늘렸다. 그러나 지원자는 없었다.

오씨는 지난해 다른 의사들에게 우연히 소식을 듣고 선뜻 백령도행을 자원했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에서 운영해 온 개인 의원 ‘이화산부인과의원’은 폐업했다. 자녀들은 오씨를 응원하기로 했다. 간호조무사 출신 동생이 ‘언니를 돌봐야 한다’며 따라나섰다. 오씨 자매는 병원에 딸린 작은 기숙사를 새집으로 삼았다.

오씨의 부임으로 백령도 임신부들은 인천까지 오가야 하는 부담을 덜었다. ‘1호 환자’는 임신 16주 차인 박별(32)씨다. 박씨는 2021년 남편인 김준(32) 해병대 6여단 중사가 경북 포항에 복무할 때 아들을 낳았고, 둘째를 가진 채로 김 중사의 백령도 발령을 받았다. 박씨는 백령도에 산부인과가 없다는 이야기에 고민하다가 오씨가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말 백령도에 왔다.

박씨는 “큰 검사는 여전히 인천 병원에 가야 하지만 주기적인 검사는 백령병원에서 받고 있다”며 “가까운 곳에 경험이 풍부한 의사 선생님이 계신다는 생각에 더 이상 마음이 불안하지 않다. 위급한 상황이 오면 의사 선생님이 받아주실 것이란 믿음이 있다”고 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8일 오씨에게 영상 전화를 걸어 감사를 표했다. 한 총리는 “백령도에 의사가 없어 애태운다는 기사가 여러 번 나와 그동안 걱정을 했는데, 와 주셔서 정말로 고마운 마음”이라고 했다. 오씨는 “주민들이 분만을 위해 배를 타고 나가야 한다니 너무나 불편하실 것 같아서 왔다”며 “백령도에서 일할 수 있어서 제가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나 백령병원에는 여전히 의료진이 부족하다고 한다. 공보의 7명 외에 이 병원에 봉직하고 있는 의사는 인하대병원장을 지내고 정년퇴임한 뒤 2014년 백령병원장을 자청해 온 이두익(76) 원장과 오씨뿐이다. 주민들의 수요가 가장 많은 내과는 물론 정형외과와 소아청소년과, 응급의학과 전문의도 없다. 간호사도 4명밖에 없어 인천시의료원 본원에서 2개월씩 파견을 보내고 있다. 오씨는 한 총리에게 “백령도 같은 의료 취약지에는 급여를 올려주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지리적, 문화적 문제가 있다”며 “안정적으로 의료진을 확보할 수 있게 지원해 달라”고 했다. 한 총리는 “지역 필수 의료를 강화하는 데 전력을 쏟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