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입학 정원 2000명 확대’ 방침에 반발해 12일 밤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었던 전공의들이 당장 집단행동에 나서진 않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사진은 13일 오전 한 대학병원에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의사들./고운호 기자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저지를 위한 대응책을 논의했으나 핵심인 파업 여부는 결정하지 못했다. 대전협은 12일 밤 9시부터 온라인 임시 대의원 총회를 열어 다음 날 새벽까지 밤샘 논의를 했다. 그런데 13일 오전 “회장을 제외한 집행부 전원이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한다”고만 발표하고, 파업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당장 파업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대전협의 이날 회의는 ‘의사 파업’의 분수령이란 관측이 많았다. 대전협에 가입한 국내 전공의는 1만5000명가량이다. 전체 의사 수의 13%에 그치지만 중환자를 치료하는 대형 병원의 수술실과 중환자실, 응급실 등에서 필수 진료를 맡고 있다. 과거 파업 참가율도 70~80%로 높은 편이어서 이들이 파업에 나설 경우 중증 환자의 진료와 수술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의료계에 따르면 이번 대전협 회의에선 파업 찬반 입장이 팽팽했다고 한다. “집단 행동으로 의대 증원 방침을 무산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신중론’도 적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표적 ‘신중론’이 “여론이 너무 불리하다”는 의견이었다고 한다. 작년 말 보건의료노조 조사에선 응답자 89%가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응답자 70~80%가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 2020년 의사 단체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발표에 반발해 파업할 때는 ‘의대 증원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50%대에 머물렀다.

이날 회의에선 “파업을 하더라도 전공의 계약 갱신이 끝나는 3월쯤 하자”는 의견도 있었다고 한다. 전공의는 소속 병원과 1년 혹은 다년제(3~4년) 계약을 하는데 이 계약을 2~3월에 갱신한다. 지금 파업을 했다가 정부가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하면 지난 1년간 전공의 근무 경력이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전협은 18일쯤 다시 파업 문제를 논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단 대전협 회장은 13일 밤 8시쯤 본인 소셜미디어에 입장문을 올려 “전공의는 국가의 노예가 아니다”며 “지금이라도 2000명 의대 증원 계획을 전면 백지화 하라”고 했다. 이 입장문에도 파업 얘기는 없었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 후 브리핑에서 “전공의 단체가 집단 행동에 나서겠다는 입장 표명이 없는 점은 다행”이라며 “지난 19년간 의대 증원이 이뤄지지 않은 점을 감안하면 2000명 증원은 너무 많이 늘리는 게 아니라 너무 늦은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의대 증원 발표는 선거용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책 결정”이라며 “(총선이 있는) 4월 전에 학교별 (의대 정원) 배정을 확정하겠다”고 했다. 박 차관은 “의사 여러분은 집단 휴진·사직 등으로 환자의 생명을 도구 삼지 말 것을 강력히 요청한다”며 “정부는 국민만 바라보고 어떠한 어려움도 반드시 극복하겠다”고 했다.

의료계 일각에선 “파업을 총선 직전에 실시해 정부·여당을 흔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장은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이번 싸움의 정확한 상대는 복지부가 아니라 청와대(대통령실)”라며 “의대 증원은 정치적 문제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 투쟁도 정치 상황을 고려해 풀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공의 등) 의사들의 투쟁 시작 시점은 2월 하순으로 잡길 권고한다. 4월 총선을 앞둔 3월이 정치인들에게 가장 취약한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면 보건의료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 정원 확대는 의사 단체를 뺀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국가적 과제”라며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에 반대해 환자 곁을 떠나겠다는 것은 비상식적이다. 의사 단체의 집단 행동은 어떠한 정당성도 명분도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