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에 반발하는 의사 단체들이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집단행동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는 12일 밤 임시 대의원총회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16개 시도의사회는 15일 전국 각지에서 ‘의대 증원 반대 궐기대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의협은 17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와 시도의사회 회장단 연석회의를 열어 집단행동 방식·시기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전공의들의 전문의 실기시험이 이달 15일 끝나는 만큼 이르면 그 직후 의료계가 파업에 돌입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파업으로 이어지면 2000년 의약분업, 2014년 비대면 의료, 2020년 의사 증원 이슈로 벌어진 파업 이후 네 번째 대규모 의사 파업이 된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전공의 파업’이다. 국내 전공의 수는 1만5000명가량으로, 전체 의사 수(약 11만5000명) 대비로는 약 13%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들은 대형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야간·휴일 당직을 도맡고, 중증·응급 환자 수술에 참여하는 등 중추 역할을 맡고 있다. 앞서 2020년에도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의료 분야까지 포함해 전공의 80% 이상이 파업에 참여하면서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이 무산된 바 있다.
이들이 집단으로 연차를 쓰거나 사직서를 내는 방식 등으로 파업에 나설 경우, 당장 대형 병원에선 환자들의 진료·수술 일정이 줄줄이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 또 신규 진료·입원은 어려워지고, 응급실·중환자실 운영에도 차질이 생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 5대 병원 전공의 수만 해도 서울아산 522명, 서울대병원 506명, 세브란스 493명, 삼성서울 457명, 서울성모 333명 등 2311명에 이른다. ‘빅5 병원’ 전공의들이 대전협 지침에 따라 집단행동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인 만큼 파장이 클 전망이다. 지난 5일 대전협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이들을 포함해 전공의 88.2%가 ‘의대 정원 증원 시 단체 행동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파업이 장기화하면 일부 병원에선 전임의(전문의 자격 취득 후 세부 전공을 수련하는 의사)와 대학교수들까지 연쇄 이탈할 수 있다. 전공의들을 대신해 응급실 당직 등에 투입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기간 파업 시엔 대기 환자의 진료·수술을 끝내고 병원을 다시 정상화하는 데까지도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전공의가 아닌 개원의가 주축인 의협도 집단 휴진 방식으로 파업에 나서면 동네 의원 상당수가 문을 닫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2020년 파업 당시 의협의 집단 휴진 참여율은 10%가 채 되지 않았다.
대전협과 의협뿐만 아니라 응급의학과 전문의 단체인 대한응급의학의사회도 “정부의 잘못된 응급 의료 정책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응급 의료 현장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의사회는 “전공의 이탈이 가시화되면 응급 의료 파행은 불가피하다”며 “응급 의료인들의 탈진과 소모는 추가 사직과 이탈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의사 단체의 움직임이 가시화되자, 환자들의 불안은 커지고 있다. 암을 비롯한 중증 질환 환자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 등에선 “겨우 잡은 수술 일정이 또 밀리면 어떡하느냐” “왜 우리 환자들이 볼모가 돼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달 말 서울 대형 병원에서 암 수술이 예정된 A씨는 “수술 날짜만 기다리며 힘들게 버텨왔는데,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라며 “환자들을 위해 하루빨리 좋은 쪽으로 결론이 나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대형 병원 관계자는 “전공의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파업 시 필요한 여러 대책을 강구 중”이라고 했다.
☞전공의
의사 면허를 취득한 후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상급 종합병원 등에서 수련하는 인턴과 레지던트를 말한다. 인턴으로 1년간 일하며 여러 진료 과목을 경험하고, 이후 특정 진료 과목을 선택해 레지던트로 3~4년간 수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