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 정원 확대에 반대하는 궐기대회를 하고 있다. 2024.2.15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 발표에 대한 의사들의 집단 반발이 구체화하고 있다.

개원의가 주축인 대한의사협회(의협) 산하 16개 시·도의사회는 15일 전국 곳곳에서 궐기대회를 열었다.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 300여 명(경찰 추산)은 이날 오후 7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대 대폭 증원을 비판했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필수 의료 (지원) 정책 패키지’라는 썩은 당근을 주고 2000명 증원을 받으라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집단행동에 나선) 의사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지원단도 구성돼 있다”고 했다. 연단에 선 원광대 전공의 1년 차 김다인씨는 “내 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오늘 사직서를 내고 무단결근해 집회에 참석했다”며 “의대 증원 이후 수련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의사가 어떻게 환자를 두고 병원을 떠나느냐고 하지만, 내가 없으면 환자도 없기 때문에 당장 나를 지키는 것이 선량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대전시의사회 소속 10여 명도 이날 오후 집회를 열었다. 울산과 광주광역시, 충북·강원·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도의사회도 궐기대회를 열었다.

전공의 1만5000여 명이 소속된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박단 회장은 이날 소셜미디어에 사직 글을 올렸다. 그는 “수련을 포기하고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을 떠난다”며 “죽음을 마주하며 쌓여가는 우울감, 의료 소송에 대한 두려움, 주 80시간의 과도한 근무시간과 최저 시급 수준의 낮은 임금 등을 더 이상 감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부디 집단행동은 절대 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자신의 사직은 정부 제재를 받을 수 있는 ‘집단행동’이 아니라 ‘개인 사유’라는 뜻으로 풀이됐다. 이날 오후 박 회장의 사의 표명 직후 원광대병원 전공의 전원인 126명이 사직서를 냈다. 서울아산병원 일부 전공의도 사표를 제출했다. 주요 병원에서 수련하는 전공의가 파업을 해 대거 빠지면 수술실·응급실의 정상 운영이 어렵다.

그래픽=송윤혜

의대생들도 집단행동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림대 의대 4학년 학생 70여 명은 15일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1년간 ‘동맹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전국 40곳 의대생들도 이날부터 동맹 휴학 여부를 묻는 설문 조사에 들어갔다. 동맹 휴학이 번질 수도 있다.

의사 단체들은 의대 정원을 대폭 늘려도 정부 주장처럼 의사들이 외과·응급의학과·신경외과 등 필수 의료나 지방 의료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필수 의료에 지급하는 의료 행위별 단가(수가)가 해외 주요국에 비해 여전히 낮고, 의사가 소송에 휘말릴 위험은 계속 높은 것이 근본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의사를 크게 늘려도 상대적으로 쉽고 돈 벌기도 좋은 피부·미용 등만 팽창할 것이란 뜻이다.

의협에 따르면 환자 생명과 직결된 ‘뇌혈관 내 수술’의 경우 우리나라의 수술료는 142만원으로 일본 662만원의 21% 수준이다. 우리나라 의사 1인당 연평균 기소율도 일본에 비해 264배 높다고 의협은 말한다. 서울의 한 의대 교수는 “저출생 등으로 지방은 쪼그라들고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에서 개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그래픽=송윤혜

의사 단체들은 정부 계획대로 의사를 늘리면 ‘과잉’ 사태가 벌어져 국민이 피해를 본다고도 말한다. 의협 관계자는 “우리와 의료 보장 체계가 많이 다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과 의사 수를 단순 비교하면 안 된다”며 “고령화 등 인구 변화가 우리와 비슷한 일본과 비교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의협에 따르면 일본의 고령화율(65세 이상 인구)이 20%에 이른 2006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46명이었다. 반면 우리나라는 고령화율이 20%에 달하는 2025년엔 의대를 늘리지 않아도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2.84명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양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우리가 일본보다 의사 수가 3만명 많은 셈이라고 했다.

의사 과잉은 국민 의료비 부담 증가로도 이어질 수 있다. 의사가 늘면 ‘생존 경쟁’이 심해져 각종 검사 등 새로운 의료 수요가 발생해 의료비 부담이 커진다는 것이다. 의협은 의대 정원이 2000명씩 계속 늘면 2040년엔 국민 한 명이 매달 6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더 내야 할 것으로 추산한다. 의협 관계자는 “지금도 지방 의대는 해부학·생리학 등 기초 의학을 가르칠 교수가 부족하다”며 “의대생 수를 단번에 늘리면 현장 실습이 부실해져 결국 환자들이 피해를 본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