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서울대·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아산·서울성모병원) 서울 대형 병원을 비롯한 상급종합병원에서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제출해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있는 20일 서울 강남 성모병원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 /박상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20일 의대 증원에 대해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말했다. 반면 전국 의대 학장들은 전날 “350명 증원이 적절하다”고 했었다.

정부는 ‘2000명 증원’의 근거로 고령화율을 강조한다. 우리나라 고령화율(65세 이상 비율)은 올 1월 기준 19.1%다. 2030년이면 25%, 2035년이면 3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2035년 65세 이상 인구 수는 현재보다 70% 늘어나 입원 일수는 45%, 외래 일수는 13%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65세 이상이 현재 900만명대에서 10년 뒤 1530만명대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 서울대 등 3개 기관의 연구 보고서에 ‘2035년 의사 수가 약 1만명 부족할 것’이란 내용이 담겼다”며 “현재 의료 취약지에 필요한 의사 수 5000명을 더해 ‘총 1만5000명 부족’이란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2021년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2.1명(한의사 제외)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최하위권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윤 대통령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은 최소한의 확충 규모"라고 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2035년까지 의사 1만명을 확보하기 위해 올해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려 5년간 선발할 계획이다. 매년 2000명씩 5년간 확충하면 1만명이 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5년 뒤 재검토를 통해 의대 정원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것”이라며 “지금 고령화율과 의사 부족 등을 감안할 때 (2000명에서) 더 늘 수도 있고, 감소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의료계 인사는 “의대 정원은 늘리기도 어렵지만 줄이기도 어렵다”며 “5000명을 (지금처럼) 3000명으로 되돌릴 수 있겠느냐”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의료 개혁이 시급한데도 역대 어떤 정부도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채 30년 가까이 지났다”며 “정부는 지난 27년 동안 의대 정원을 단 1명도 늘리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오히려 2006년부터는 의대 정원이 줄어서 누적 합계 7000여 명의 의사를 배출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의료계는 극심한 저출생으로 의사 1인당 환자 수가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 해 2000명씩 늘릴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의료계는 또 “우리나라는 환자의 병원 이용 편의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의료 접근성’에서 OECD 최상위권”이라고 했다. 동네 병원도 많고, 종합병원 진료도 크게 어렵지 않아 국민 1인당 외래 진료 횟수가 연간 15.7회에 달한다는 것이다. 현재 부족한 건 의사 수가 아니라 필수·지역 의료로 의사들을 유인할 ‘정부 지원책’이라는 뜻이다.

그래픽=양인성

의대 정원을 늘리면 필수 의료로 인력이 유입될지를 놓고도 양측 입장은 엇갈린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단순히 의대 졸업생들을 늘려 ‘낙수 효과’를 일으킨다는 개념은 아니다”라고 했다. 의사 수를 넘치게 해서 소아과·산부인과 같은 분야로 의사를 밀어낸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의사가 크게 부족한 만큼 의대부터 늘려야 필수 의료 분야로 의사가 갈 여력도 더 생긴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반면 의료계는 낮은 수가와 소송 부담이 해소되지 않으면 필수 의료로 가려는 의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박민수 차관은 이날 ‘2000명 증원하면 의대 교육의 질이 크게 떨어질 것’이란 의료계 지적도 반박했다. 박 차관은 “1980년대 당시 서울대 의대는 정원 260명인데 현재는 135명이고, 부산대는 당시 208명인데 현재는 125명”이라고 했다. 박 차관은 지난해 의대 40곳을 대상으로 ‘의대 증원 수요 조사’를 했더니 “총 2151~2847명 증원을 희망했다”고도 했다. 그는 “총장 책임하에 학교 전체 사정을 감안해 제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대 학장들은 전날 “2000명을 늘리면 수십 년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우리 의학 교육 수준을 다시 후퇴시키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1980년대 당시 정부는 ‘졸업정원제’를 도입해 정원의 30%를 더 선발했었다. 당시 의대생이던 의료계 인사들은 “유급생 등이 한꺼번에 늘면서 강의실은 자리도 부족했고 실습 현장의 카데바(시체)도 부족해 난리였다”며 “당시 교육에 문제가 없었다고 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