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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 감사원은 “2015~2022년생 아동 중 임시 신생아 번호는 있지만 주민 번호는 없는 아이가 2123명에 달한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병원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사라진 아기’가 2000명이 넘는다는 뜻이다. 감사원이 1%인 20여 명만 추려 아이의 안전을 확인했는데 부모에게 살해돼 냉장고에 유기된 아기와 야산에 버려진 아기 등이 발견됐다. 영양실조로 굶어죽은 경우도 있었다. 미등록 아기들이 보건·보육·교육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생존 여부조차 불투명한 상태로 방치된 비극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그래픽=김하경

복지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사라진 아기’ 2123명에 대해 전수조사에 나섰다. 249명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출생 미등록 아기 2123명의 사망률을 계산하면 11.7%에 이른다. 2021년 영아 사망률(0.24%)의 50배 수치다. 이런 비극은 국가 제도 미비와 병원 등의 무관심이 불러온 것이었다. 그때까지 정부와 병원은 영아의 출생신고를 확인하지 않고, 출생신고를 안 해도 ‘과태료 5만원’만 물렸던 시스템에 안주하고 있었다. 반면 미국·영국·독일 등은 신생아가 태어나면 수일 내에 의료 기관이 당국에 출생 사실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하고 있었다.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는 방임·학대의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병원에서 부모에게 ‘주민등록법상 1개월 이내에 출생신고를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이 전부였다. 부모가 안 하면 정부는 확인할 방법도, 의무도 없었다. ‘영아 보호’에 대한 책임과 의무 방기였다. 출생신고 전까지 공백기에 영아는 하나의 ‘물건’처럼 취급됐다. 부모가 팔고, 버리고, 심지어 목숨까지 앗아갔다. 정부는 매년 40조원이 넘는 저출산 예산을 쓰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기는 ‘안전의 사각지대’에 방치한 것이다.

재작년 개봉한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아기 위탁함)에 버린 신생아를 빼돌려 돈 받고 팔아넘기려는 브로커 일당 얘기를 다뤘다. 현실은 영화보다 가혹하다. 베이비 박스의 아기는 생명은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가출 청소년 모임인 ‘가출 팸’ 등에서 미혼모가 몰래 출산해 제3자에게 넘긴 아기는 ‘불법 시장’에서 물건처럼 유통된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당시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텔레그램 등을 검색해보니 ‘영아 매매’ 글이 수십건 나왔다.

정부는 2022년 3월 ‘의료 기관 출생 통보제’를 도입하는 가족관계 등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출생 통보제는 의료 기관이 지방자치단체에 영유아 출생 기록을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제도다. 그러나 의사들 반발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산부인과 의사 단체들은 “정부가 출생신고 비용과 인력을 의료 기관에 떠맡기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병원들은 신생아 출산 직후 의무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결핵예방접종(BCG) 기록은 질병관리청에 빠짐없이 신고한다. 접종 기록을 제출하면 질병청이 지원금을 주기 때문이다. 정부도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의 ‘임시 신생아 번호’ 등이 담긴 결핵예방접종 자료와 각 병원이 분만 진료비를 청구할 때 제출하는 신생아 정보를 갖고 있으면서도 손을 놓고 있었다.

정부와 국회는 ‘사라진 아기’의 비극이 드러나자 출생 통보제를 서둘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했다. 작년 10월에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인 위기 임신부가 가명으로 낳을 수 있도록 하는 ‘보호 출산제’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법안 처리를 서둘렀다면 적지 않은 아기들이 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정부는 2015~2022년 ‘사라진 아기’가 2123명인 것으로 드러나자 2010~2014년생 아동 중 ‘미등록’이 몇 명인지 조사했다. 그랬더니 9603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이날 “9600여 명의 생사를 확인한 결과 469명이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2010~2022년까지 목숨을 잃은 아기는 718명(249명+469명)에 달한다. 소재를 알 수 없는 2500여 명을 추가로 조사하면 ‘비극’은 더 커질 것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큰 대가를 치르고 출생 통보제와 보호 출산제가 시행된다”며 “사라진 아기의 비극이 이제 끝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조백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