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한 의료진이 옆에 있는 다른 의료진의 등을 토닥이는 모습. 현재 1만3000여 전공의 중 70% 이상이 병원을 떠난 상태다./ 연합뉴스

28일 오전 7시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응급의료센터. 잰걸음으로 여러 환자를 돌보던 의사(전문의) 얼굴엔 이슬비 같은 땀이 맺혀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의사는 응급실 당직을 맡아 꼬박 36시간을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응급 환자들을 보며 사명감으로 버틴다”며 “전공의들이 각자 뜻에 따라 집단 사표를 냈지만 결과적으로 병원을 비운 것은 사실이니 국민들이 충분히 지탄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한 50대 교수는 “전공의가 없어 힘들지만 환자를 위해서도, 후배(전공의)를 위해서도 우리는 남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 전임의(세부 전공 수련 중인 전문의)는 “병원을 끝까지 지키고 싶다”고 했다.

현재 1만3000여 명의 전공의 중 70%가 넘는 9000명 정도가 병원을 떠났다. 수술 건수가 평소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교수와 전임의, 일부 전공의들은 여전히 환자 곁을 지키며 고군분투하고 있다.

본지 취재 결과, 부산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 내과에서 중환자실은 이광하·류완호 교수 두 명이 전담하고 있다. 이들은 전공의가 집단 이탈한 지난 20일부터 28일까지 200시간 가까이 귀가를 못 하고 있다고 한다.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며 24시간 중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이 병원 응급실에도 기존 전공의 6명이 빠져 전문의 6명이 2인 1조로 2교대 근무 중이다.

현장을 떠나지 않은 전공의들도 있다. 충남의 한 사립 대학병원에선 내과 전공의 두 명이 남아 중환자실을 맡고 있다. 이들은 사직서를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 병원 응급실 전공의 5명은 사표는 냈지만 환자를 떠나진 않았다. 5명이 1명씩 돌아가며 당직을 하고 있다.

인천의 가천대길병원은 전공의들이 떠나자 교수와 전임의 200여 명이 비상 근무표를 짜고 중환자실과 응급실을 분담하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교수들도 12~24시간 꼬박 당직 근무를 서고 있다”고 했다. 경북대병원도 교수들과 전임의들이 ‘전공의 공백’을 메우고 있다. 밤에 당직 근무를 하고 다음 날 바로 외래 진료를 하고 수술을 한다. 경북의 한 의대 교수는 “거의 온종일 병원에 머물고 있다. 운동으로 치면 감독이 다시 현역으로 돌아간 거여서 고달프긴 하다”며 “환자를 돌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많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픽=양인성

서울대병원 응급실도 교수와 전임의들이 당직을 짜고 심정지 환자 등 중증·응급환자를 받고 있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은 상황에서 전임의마저 연장 계약을 하지 않고 떠나면 응급 환자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에선 떠난 일부 전공의들이 전화로 응급 처방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전공의들 사이에선 여전히 정부가 ‘의대 2000명 증원’ 방침을 백지화하지 않으면 현장 복귀를 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일부 전공의들은 “복귀해서 환자들을 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충남의 한 종합병원 전공의는 “프리 라이더(무임 승차자)가 되고 싶지 않아서 사직서를 제출하긴 했지만 동료들 몰래 근무를 하거나 전화로 원격 처방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의대생들도 “동맹 휴학이 강압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최근 서울대 의예과 익명 게시판에는 “(동맹 휴학 관련) 학생회 지시에 무조건적으로 참여 부탁한다”는 글이 올라왔다. 그러면서 “ ‘휴학 굳이 해야 해?’ 혹은 ‘내가 한다고 바뀌어?’ 같은 자세를 가진 학생은 없어야만 할 것”이라며 “전공의 선생님들도 잃을 것 잃어가면서 싸우는데 힘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 글 밑엔 “권유나 부탁이 아닌, 군대식 위계 질서를 기반으로 한 강요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변화를 위해선 행동이 필요하나, 그 행동이 자신의 문제의식이 아닌 타자의 압력에 기반해 이뤄진다면 과연 바람직한 것일지 의문”이라는 댓글이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