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 의료가 요즘 의대 증원 갈등의 한가운데에 있다. 정부는 필수·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의대 증원도 필요하다는 것이고, 의사들은 의대 증원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며 필수·지역 의료에 대한 적정 보상과 법적 부담 완화가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필수 의료 위기는 의료 서비스 대가인 수가(酬價)가 낮고 상대적으로 근무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원이 지난해 9월 낸 ‘국가별 요양급여 비용 비교’ 보고서를 보면 관상동맥우회술의 경우 미국은 7만6385달러(약 1억160만원)인데, 우리나라는 10분의 1에도 못미치는 7323달러(약 974만원)에 불과하다. 독일은 우리의 2.4배 정도인 1만7667달러다. 담낭 절제술도 미국은 1만6287달러, 독일은 6058달러인데 우리나라는 1147달러에 그치고 있다. 한 의대 교수는 “의사 여러 명이 보조 인력과 함께 고가 장비를 동원해 한두 시간 하는 수술의 비용이 50만원이라고 하면 외국 의사들이 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필수 의료 분야인 흉부외과 전공의를 뽑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 하지만 미국·호주 등에서는 흉부외과가 인기 분야로 꼽힌다. 미국에서 심장 수술 의사 연봉은 10억원 안팎으로, 일반 내과 의사(3억원 남짓)의 3배 수준이고, 호주에서는 흉부외과 의사가 우리나라 의사보다 2배 이상 임금을 받기 때문이라고 한다. 필수 의료 의사에 대한 경제적 보상이 확실한 것이다. 박은철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밤새 콜 대기 상태인 필수 의료 의사들 보수를 그렇지 않은 의사에 비해 30%만 더 받게 해도 필수 의료 문제는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찔끔찔끔 땜질식 처방 반복
필수 의료 위기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왜 완화 기미도 보이지 않고 악화일로를 걷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진찰, 검사, 처치 등 개별 의료 행위 6000여 개마다 가격을 매겨 지급하는 방식이다. 우선 의료 행위의 업무량과 진료비용·위험도 등을 고려해 ‘상대 가치 점수’를 매기고, 여기에 매년 병의원, 약국 등 유형별로 협상해 결정하는 ‘환산 지수’를 곱하고, 각종 가산율을 반영해 책정하는 방식이다. 환산 지수는 물가상승률 등을 감안해 매년 2~3% 정도 올리고 가산율은 정부가 정책적으로 정한다. 예를 들어 종합병원에서 인공관절 치환술을 할 경우 이 수술의 상대 가치 점수는 7064점, 환산 지수는 79.7원이다. 이 둘을 곱하고 여기에 종합병원이니 25%를 더한 70만3760원이 수술 가격이 된다.
그런데 2001년 상대 가치 체계를 도입한 이후 사람 손으로 하는 건 보상이 낮고 기계로 하는 것은 높은 것이 우리나라 수가 체계의 특징이다. 2020년 기준 의료 행위에 지출한 건강보험 재정은 41조6041억원이었다. 이 중 검체나 영상 검사는 각각 13% 안팎인 5조원 대를 쓰면서 수술에는 7.7%인 3조2215억원밖에 쓰지 않았다. 우리나라 병원들이 조직 검사 같은 검체 검사, MRI·CT 등 영상 검사를 많이 하는 이유다.
이런 구조여서 수술이 잦은 필수 의료 분야에서는 수가를 올려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런데도 정부는 근본적인 상대 가치 점수는 손대지 않고 가산 제도를 활용해 비용을 조금씩 얹어주는 땜질식 처방만 계속했다. 상대 가치 점수는 5년마다 조정해야 했지만 지금까지 2008년, 2017년, 지난해 9월 등 세 차례밖에 조정하지 않았다.
그사이 소아과·산부인과는 저출생 여파로 수요가 줄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지방의 경우 인구 감소에다 KTX 등 개통으로 환자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까지 심해지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그 결과가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의료 상경’으로 나타난 것이다.
◇”5년간 매년 2조 투입하겠다”
상대 가치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의사 업무량을 따지는 것은 의사들이 아니면 파악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재평가할 때마다 의사협회에 제출해달라고 요청하는데 의협이 내부 조정을 하지 못한다. 건강보험 재원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술 등 낮은 것을 올리려면 높은 것을 내려야 하는데 어느 과목도 양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최종 수가 결정권을 갖고 있는 복지부가 필수 분야 수가를 꾸준히 현실화했으면 지금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의사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할 명분도 현저하게 줄었을 것은 물론이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필수 의료 붕괴 위기는 정부가 지불 제도를 개선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방치해온 결과”라고 말했다.
정부는 2월 초 매년 2조원씩 5년간 10조원을 들여 내과·소아과·산부인과·응급의학과 등 필수 진료과의 수가와 지방 병원의 수가를 인상하겠다는 내용의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이번에는 좀 다를까. 박은철 교수는 “매년 2조원을 투입하면 필수 의료는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지방 의료는 추가적인 재원과 그 지방에 맞게 ‘핀셋 지원’하는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들은 정부 대책을 믿지 않고 있다. 한 외상외과 의사는 “우리가 현장에서 피 토하듯 제발 필수 의료 살려달라고 할 때 쳐다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내놓은 정책인데 어떻게 믿겠느냐”고 말했다. 다른 수도권 의대 교수도 “필수 의료 살리기는 정부가 20년 전부터 해온 얘기인데 해결을 못하니 안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금부터 필수 의료 수가를 올려도 너무 늦었다면서 “정부가 추진 중인 필수 의료 정책 패키지와 건강보험 개혁안 등을 빠르게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중규 복지부 건강보험정책국장은 “현장에서 변화를 체감할 수 있도록 최대한 구체화 속도를 높이는 것이 목표”라며 “원가를 파악할 근거 자료도 충분히 확보한 만큼 이번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필수 의료 살리기 남은 시간 5~6년에 불과”
신영석 보사연 명예연구위원
신영석 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본지 인터뷰에서 “그나마 소명 의식을 갖고 필수 의료를 하는 의사들이 은퇴하면 누가 책임질 거냐”며 “필수 의료를 정상화하는 데 남아 있는 시간이 5~6년 남짓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빨리 의대 증원해 교육시키고 수가를 정상화해 이들이 현장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연구위원은 정부가 의대 입학 정원을 2000명 늘리는 데 참고했다고 한 보고서 3개 중 하나를 작성했다.
-의사 집단행동 사태가 해결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공의 등 의사들도 완강하고 대통령이 직접 추호도 후퇴 없다고 하니 현실적으로 타협 여지가 굉장히 좁아진 것 같아 걱정이다.”
-의사를 늘리면 의사들이 큰 피해를 보나.
“지금 의사 수가 11만명 남짓이다. 2035년쯤엔 13만명 전후로 느는데 정부 방침대로 1만명 더하면 14만명 정도다. 7~8% 늘어나는 것인데 의사들이 피해를 입으면 얼마나 입겠느냐. 저출산 고령화로 의료 환경이 급격히 변하는데, 젊은 의사들이 우리나라 제반 의료 상황에 대해 잘 이해하고 이러는지 모르겠다.”
-의사 1만명 증원 입장에 변화가 없나.
“그렇다. 다만 정부는 2000명씩 5년 증원을 발표했는데 1000명씩 10년 동안 늘리며 연착륙시키는 게 좋을 것 같다. 5년 후는 증원한 학생들이 졸업도 하지 않아 정책을 평가하기에도 너무 짧다.”
-이번에도 전공의들이 앞장서고 있다.
“전공의들이 전문의 이후를 보며 격무를 견디는데 갑자기 정부가 이렇게 하니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것 같다. 이번 기회에 대형 병원이 전공의에 의존하는 현실도 바꿔야 한다. 다른 나라는 병원 전공의 비율이 10~15%인데 우리나라 웬만한 병원들은 30~40%, 서울대병원은 40%가 넘는다. 정부가 일정 부분 방치한 잘못이 있다. 상급 병원들은 중증 환자를 보는데 초보 의사들인 전공의들을 대거 넣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상급 병원은 전문의 중심으로 가는 것이 의료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전공의 근무 여건을 개선해야 하지 않나.
“전공의들이 요즘은 줄어서 80시간 일한다는데 일하는 시간을 더 줄이고 상응하는 보상도 해야 한다.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공의 업무는 60%는 근로, 40%는 교육인데, 교육 부분은 지금이라도 정부가 지원해주면 좋겠다.”
-의사들은 수가가 원가 이하라고 하는데.
“의료 행위 하나하나를 보면 우리나라 수가가 낮기는 하다. 다만 빈도를 감안하면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나라 의사들 수입이 미국을 제외하고는 거의 세계 1등 수준 아니겠느냐. 항상 수가가 원가 아래라고 하는데, 그러면 많은 의사들 수입이 그렇게 좋겠느냐.”
-의원과 상급병원 의료 행위에 동일 수가를 주는 것도 문제 아닌가.
“아무래도 병원이 더 중한 환자를 볼 텐데 같은 점수를 주는 것은 맞지 않는다. 의사들이 병원을 떠나 개업하는 요인 중 하나다. 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의사협회에서는 전혀 말하지 않는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