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3일까지 전공의 복귀가 뚜렷하지 않자 예비비 1200억원을 편성하는 등 장기전 대비에 나섰다. 정부가 제시한 복귀 시한(2월 29일)과 연휴가 지났지만, 이탈한 전공의 9000여명 중 1000명 미만이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의사들은 3일 병원으로 가는 대신 대한의사협회(의협) 주도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에 참석했다. 경찰 추산 1만2000명, 의협 추산 4만명이 모였다. 이들은 “의대 2000명 확대 졸속 추진을 중단하라”고 외쳤다.
정부는 예비비 1200억원을 전공의 대신 당직 등을 서는 의료진 보상과 병원별 대체 인력 채용, 공공병원 운영 연장 비용 등에 쓸 예정이다. 예비비는 예산상 용도가 정해지지 않은 ‘비상금’으로, 주로 재난 피해를 복구할 때 편성한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예비비는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집행될 것”이라며 “중증·응급 환자를 살리고 있는 병원에 집중 투입할 예정”이라고 했다.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의원급 등에서 의사들을 뽑으려 한다”고 했다.
정부는 또 이달 중 공중보건의 150명과 군의관 20명을 일선 병원에 투입해 전공의 공백을 최대한 메울 계획이다. 정부 당국자는 “병원마다 시스템이 다르기 때문에 공보의와 군의관은 각자 전공의 때 수련했던 병원에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이 당국자는 “마취과 의사 부족으로 수술을 연기하는 대형 병원이 많은데, 정부 지원을 받으면 의원급에 있는 마취과 전문의를 데려오려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아직 법적 지위가 모호한 ‘진료 보조(PA)’ 간호사의 업무 범위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배포할 예정이다.
정부는 연휴 후 첫 근무일인 4일부터 미복귀 전공의들을 본격적으로 가려내, 면허정지 등 행정 처분에 나선다. 주동자는 고발해 사법 처벌 절차를 밟게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불법적으로 의료 현장을 비우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정부는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정부의 의무를 망설임 없이 이행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불가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절차를 밟아나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만 정부는 3일까지 복귀 의사를 밝힌 전공의는 처벌하지 않을 방침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는 “전임의(전문의 따고 특정 분야 수련)와 의대 교수들이 버티면 최대 2~3주는 견딜 수 있겠지만 오래갈 순 없다”며 “4일 돌아오는 전공의가 얼마나 될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서울 빅5(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 병원의 경우 전체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이 37%, 전임의는 16%에 달한다.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고 전임의까지 집단 행동에 동참하면 수술 건수가 평시 대비 30%대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대형 병원 관계자는 “전임의 임용 계약은 4일까지 확정해야 하지만, 이번엔 기간을 조금 더 두고 기다릴 것”이라고 했다.
이날 전공의 등 의사들은 병원 대신 의협 비상대책위원회가 여의도에서 개최한 ‘전국 의사 총궐기 대회’에 모였다. 경찰은 1만2000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했지만 의협 측은 “전공의와 의대생, 그 가족들까지 포함해 4만명이 자발적으로 참석했다”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여의대로 왕복 10차로 중 5개 차로를 450m가량 점거했다. 이들은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We are not Criminals)’ ‘준비 안 된 의대 증원 의학교육 훼손한다’ 등이 적힌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김택우 의협 비대위원장은 전공의 집단 이탈에 대해 “중생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몸을 태워 공양한 등신불”이라며 “의료 노예의 삶이 아닌 진정한 의료 주체로 살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난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일부 의사가 제약회사 영업사원에게도 집회 참석을 강요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통령실과 경찰은 “불법 행위에는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했다. 의협 측은 “의사 단체에서 제약사 직원을 동원하라고 지시하지 않았다”며 “일반 회원(의사)들의 일탈이 있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강요된 것인지, 제약사 직원들의 자발인지는 확인된 바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