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들이 파업에 돌입한지 17일째 되는 7일 오후 서울 시내의 한 대형병원 응급실의 모습/이태경기자

7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타투숍. 65㎡(20평) 규모에 시술 침대 3개를 갖춘 이 숍엔 하루 평균 10여 명의 손님이 온다고 한다. 침대 옆 선반에는 소독액과 일회용 바늘 등이 놓여 있었다. 타투이스트(문신사) 이모(34)씨는 “우리는 프랜차이즈 허가가 난 타투숍이지만, 의료법 위반 혐의로 경찰 신고를 당해 조사받고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문신은 의사만 시술할 수 있는 점을 악용해 경쟁 업체가 신고했다고 한다.

타투이스트 김도윤(44)씨는 2019년 중순 미국으로 건너가 배우 브래드 피트의 오른쪽 팔에 벌 모양 타투를 해줬다. 하지만 그해 12월 김씨는 국내 연예인에게 문신을 해줬다가 의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김씨는 “해외에선 타투이스트를 아티스트(예술가)로 인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만 불법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아예 이민을 가서 타투이스트로 활동하는 사람도 많다”며 “위생 감독은 국가가 철저히 하되 예술은 그 자체로 존중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의사 단체들은 “문신은 의료인만 할 수 있다”며 관련 법 개정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문신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거의 없다. 피부과에서 하는 문신도 의사가 아닌 병원이 고용한 문신사가 맡는다고 한다. 이순재 대한문신사중앙회 교육위원장은 “의사 중에 타투 영업을 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모른다”고 했다.

그래픽=김의균

문신이 ‘의료 행위’인지 법적 논란은 30년 전부터 불거졌다. 1992년 대법원은 감염 등 보건 위험을 이유로 문신을 ‘의료 행위’라고 판단했다. 의료법 27조에 따르면 의료 행위는 의료인(의사)만 할 수 있다. 2022년 헌재도 현행 의료법을 합헌으로 결정했다. 의료법 2조는 ‘의사는 의료와 보건 지도가 임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 논리상 문신은 의사만 할 수 있다는 취지다. ‘피어싱’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2016년 귓볼 뚫기 등을 하는 미용업자를 단속하기도 했다.

외국과 달리 국내에선 의사가 독점하는 영역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코로나 백신도 미국, 캐나다 등에선 약국에서 맞을 수 있었다. 국내에선 초음파 검사가 의사들만의 영역이었다. 8일부턴 간호사에게도 문을 열었다. 물리치료사 개업도 한국·일본을 제외한 상당수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 2019년 서울시의사회는 서울시 돌봄센터 간호사들이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을 방문해 혈압과 혈당 측정 등을 하는 데 제동을 걸었다. 지난해 복지부는 간호사도 병원 밖 혈압·혈당 측정이 가능하다는 유권 해석을 내렸다. 보톡스나 필러 같은 미용 시술도 영국 등에선 자격을 갖추면 의사가 아니라도 할 수 있다. 레이저와 리프팅 등도 기계가 주로 한다. 한국에선 의사만 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문신 시장, 非의료인에게 개방 - 7일 오후 서울의 한 작업실에서 타투이스트(문신사)가 고객의 몸에 문신을 새겨주는 모습. 정부는 현행법상 의료인에게만 허용되는 문신 시술 행위를 비(非)의료인에게 개방하기 위해 자격시험 개발 등의 연구 용역을 최근 발주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이른바 ‘걸어 들어오는(Walk in) 환자’로 대표되는 경증 환자의 대형 병원 응급실 이용을 제한하는 등 병원 운영 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이날 서울 세브란스병원 응급실 앞에는 “심정지, 급성 심근경색, 급성 신경학적 이상 환자를 제외하면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같은 날 서울대병원과 서울아산병원 응급실 앞에도 “응급 환자 외 진료는 제한될 수 있다” “응급실 진료는 접수 순서가 아니라 의료진이 판단하는 중증도 순서”라는 안내문이 붙었다. 대형 병원들도 중증·응급 환자만 받고 있는 것이다. 종전엔 경증 환자를 거부하면 ‘목숨 책임질 수 있느냐’며 멱살 잡는 환자도 적지 않았다.

☞의사가 독점한 분야

현행법상 문신, 피어싱은 의사만 할 수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가 관행적으로 하는 채혈, 삽관, 콧줄 제거, 소변줄 제거, 드레싱(소독), 수술 동의서 작성 등도 의사 영역이다. 보톡스, 필러 같은 간단한 미용 시술도 외국과 달리 우리는 의사가 독점하고 있다.

☞워크인(Walk in) 환자

응급실에 걸어 들어올 정도의 경증 환자를 뜻한다. 단순 발열, 복통, 열상 등이 대표적이다. 해외에선 ‘예약 없이 병원을 방문하는 환자’를 의미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