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대폭 증원을 주장해온 김윤(58)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10일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더불어민주연합’ 후보로 뽑혔다. 이날 선출된 다른 비례 후보 3명과 함께 사실상 당선권에 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교수는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2050년엔 의사 약 6만5000명이 부족하고, 이를 충원하려면 2025년부터 2040년까지 15년간 4500명씩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정부가) 과도한 2000명 증원이라는 목표를 제시하면서 의료계를 자극했다”며 적정 증원 규모는 ‘400~500명 선’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대 2000명 증원도 “부족하다”고 했었는데, ‘500명 증원’을 주장한 민주당 위성정당에서 ‘의원 배지’를 달 가능성이 커졌다. 김 교수는 이날 후보 공개 오디션에서 “나는 여야가 모두 인정하는 정책 전문가이자 의사들에겐 공적(公敵)”이라며 “대한민국 의료·돌봄 체계를 혁신하는 기회를 달라”고 했다.
김 교수는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설계한 김용익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라인으로 꼽힌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민주당 후보 캠프에 참여해 ‘포용복지국가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는 등 정책 자문에 응했다. 정치적으로 민주당과 가깝지만, 의대 증원 등에 관해선 현 정부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의대 증원 우선론’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주로 냈다. 2010년 한 포럼에선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와 공급 체계 변화 없이 의사 수만 늘리는 것은 수술과 입원 진료만 늘린다”고 했다. 이듬해 한 기고에선 “의료 질 개선을 위해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는 OECD 권고에 동의하기 어렵다. 늘어난 의사 수만큼 전체 외래 진료 횟수가 늘 가능성이 크다”고도 했다. 2017년 5월 한 인터뷰에선 “의사 수가 부족하냐 아니냐는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의료취약지 문제를 의사 총량을 늘려 해결하려 한다면 대도시 공급과잉을 초래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다 2020년 총선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의사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며 공공의대 신설 등을 주장했다. 작년 6월 이후 ‘의대 증원’이 이슈로 떠오른 뒤부터는 구체적인 수치를 언급하며 “의대 정원을 약 2000~4500명씩 늘려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날 오디션 정견 발표에서는 “응급실 뺑뺑이, 소아 진료 대란 등 대한민국 의료는 위기에 처해 있다”며 “의사를 늘리고, 지역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고, 좋은 공공병원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필수·지역의료 위기’와 관련해선 “지역 출신을 뽑는 ‘지역 인재 전형’, 선발할 때부터 의사가 부족한 지역·분야에서 10년 정도 일하게 하는 ‘지역 의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역의사제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날 심사위원단·국민심사단 평가, 문자 투표를 합산한 점수에서 김 교수는 전체 후보자 12명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재명 대표가 공천권을 장악한 민주당의 지지자들이 ‘의대 대폭 증원’을 선두에서 요구하던 김 교수를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학자 소신이 아니라 자신의 영달을 위해 국민 여론에 영합하는 발언을 쏟아낸 인사”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 교수는 지난달 TV토론에서 의사 부족을 언급하며 “2019년 2억원 남짓이던 종합병원 봉직의 연봉이 최근 3억~4억원으로 올랐다”고 하면서 의사 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반면 김 교수처럼 의대 증원을 요청했던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최근 국민의힘 비례대표 위성정당인 ‘국민의미래’에 공천 신청을 했다가 논란이 불거지자 철회했다. 그는 “의대 증원을 추진해 온 진정성을 의심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치권 인사는 “김 교수는 이재명 대표의 ‘500명 증원’과 결이 다른 목소리를 냈지만 이 대표와 가까워 비례 후보가 됐고, 여당 핵심과 별 연결 고리가 없는 홍 총장은 안 된 것 아니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