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오전 10시 인천 계양구 인천세종병원 6층 수술실에선 61세 중증 심장 질환 환자가 승모판(심장 판막) 치환·부정맥 수술을 받고 있었다. 집도를 맡은 심장혈관 흉부외과 박표원·김영환 과장이 환자 심장을 열고 인공판막을 고정하는 동안 의료진 4명이 수술을 도왔다. 다른 의료진 5명은 환자의 심장·폐 기능을 대신하는 ‘인공 심폐기’를 확인하면서 수술 도구 등을 수시로 전달했다. 온도를 16도로 맞춘 수술실에서 의료진 11명이 한 팀으로 움직이며 4시간 동안 수술을 진행했다. 같은 시각 옆 수술실에선 선천성 근이영양증으로 중증 심부전을 앓는 20세 환자의 좌심실 보조장치(인공 심장) 삽입술이 이뤄졌다.
인천세종병원은 이런 심장 수술을 하루 2~4건씩 한다. 2017년 3월 326병상 규모로 문을 연 ‘2차 병원(중형 병원)’이지만, 심장 분야만큼은 서울 ‘빅5′로 불리는 대형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학병원이 넘기는 중증 환자도 있고, 심근경색 등 응급 환자도 많이 들어온다. 올해 2월까지 7년간 1340건의 심장 수술이 이곳에서 이뤄졌다. 김경희 인천세종병원 심장이식센터장은 “심장이식·인공심장 등 수술 건수 기준으론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며 “수술 후 생존율은 100%”라고 말했다.
인천세종병원 같은 2차 병원은 전공의(인턴·레지던트)는 거의 없고, 전문의 위주로 운영한다. 인천세종병원은 전문의 90여 명이 간호사 등과 함께 하루 1600명 넘는 환자를 보고 있다. 중환자실 당직도 전문의 세 명이 돌아가면서 맡는다. 심장이식센터·뇌혈관센터·내과센터·외과센터·소아청소년센터 등 21개 전문센터를 두고 지역·필수 의료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병원 운영은 쉽지 않다. 현재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 체계가 병원 규모가 클수록 많이 주는 구조여서 같은 진료를 해도 상급 종합병원보다 적은 돈을 받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서울 대형 병원들은 이번 (전공의) 사태로 적자를 보게 됐다고 하지만 지역의 ‘작지만 강한’ 2차 병원 상당수는 만성적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대형 병원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도 고민이다. 전문의를 많이 채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업무 강도가 높다 보니 전공의가 ‘손발’ 역할을 해주는 서울 대형 병원으로 이직이 잦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우리 병원의 숙련된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시로 빠져나가면서 ‘심장 사관학교’라는 말까지 듣는다”며 “필수 의료는 원 팀으로 호흡을 계속 맞추는 게 중요한데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했다. 이어 “지금도 경기·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여러 대학병원 분원이 문을 열고 있는데, 2차 병원의 인력 이탈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는 “그간 정부 지원이 대형 병원에 집중되는 동안 2차 병원들은 소외된 면이 있다”면서 “의사 수를 늘리는 것보다 중요한 건 지역·필수 의료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이 마음 놓고 환자를 볼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지금 열심히 일하는 지역·필수 의료 전문의들을 제대로 대우해 사명감을 갖고 일하도록 해줘야 그 분위기가 전공의로도 이어지고, 지역·필수 의료 문제를 풀 수 있다는 취지다.
정부는 이날 2차 병원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중소·전문 병원을 키워 ‘빅5′에 의존하는 기존 의료 체계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국무회의에서 “지역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지역 의료에 투자를 확대하고, 필수 의료를 유지하기 위한 정당하고 합당한 보상 체계도 만들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특히 현재도 상급 종합병원 수준으로 전문성을 갖고 중증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 강소 전문 병원들이 있다”며 “정부는 병원 규모가 아니라 실력에 따라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 전문성 갖춘 강소 전문 병원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현재 상급 종합병원들이 전공의 이탈로 수술·입원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그 공백을 2차 병원들이 메워주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경증 환자도 상급 병원에 몰리는 기형적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해선 중형·전문 병원을 키워야 한다”며 “빅5 병원은 전공의 비중이 전체 의사의 약 40%를 차지할 정도로 높은데, 중형·전문 병원을 키우면 전공의 이탈로 의료 현장이 마비되는 사태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병원 규모에 따른 현재 수가 체계를 실제 각 병원의 실적 등을 기준으로 산정하는 시스템으로 바꿔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 총리는 전날엔 뇌혈관 질환 전문 병원인 서울 명지성모병원을 찾아 “규모가 작은 전문 병원도 실력이 있으면 상급 종합병원만큼 수가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보건복지부는 전문 병원이 수준 높은 진료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검토하라”며 “문화체육관광부는 대국민 홍보를, 소방청은 일선 구급요원과 119 구급상황실 등에 뛰어난 진료 실적을 보인 전문·강소 병원에 대한 정보 공유와 교육을 확실히 하라”고 했다. 한 총리는 “필수 의료와 지역 의료가 붕괴해 전 국민이 이른바 ‘빅5′ 병원에 가는 모순을 해소하고, 국민 누구나 ‘우리 동네 빅5′를 믿고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