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오전 인천 계양구 인천세종병원 뇌혈관센터 접수실이 환자들로 붐비고 있다./장련성 기자

뇌혈관 전문의 학회인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와 대한뇌혈관외과학회는 지난 15일 성명에서 “(의료 파행)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병원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전공의(인턴·레지던트)에 이어 의대 교수들도 ‘집단 사직’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환자를 떠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17일 대한뇌혈관내치료의학회를 이끄는 권순찬 회장(울산대병원 신경외과 교수)은 본지 인터뷰에서 “환자 곁을 지킨다는 것이 특별한 얘기도 아니고, 정부의 2000명 (의대) 증원에 동의한다는 뜻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정부가 2000명 증원에서 한발 양보한다고 해서 의사들에게 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지금 양측(정부·의료계) 대화가 아예 꽉 막혀 있는데 환자와 국민, 대한민국 의료를 위해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상대적 약자’인 전공의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대화를 시작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권 회장은 ‘바이털(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의사’이자, 울산 권역 심뇌혈관질환센터장도 맡고 있는 지역 의사다.

권순찬 울산대학교병원 울산권역심뇌혈관질환센터장./뉴시스

권 회장은 의대 증원에 대해 “늘릴 때 늘리더라도 한꺼번에 2000명이 아니라 점진적으로 갈 수 있는 것 아니냐”며 “우리 의료 체계를 전문의 중심으로 바꾸기까지, 2000명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증원을 할 때도 충격을 최소화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없으면 뇌경색·뇌출혈 환자들이 당장 목숨을 잃기 때문에 지금껏 늘 그래 왔듯이 마지막까지 병원에 남아 환자를 지키겠다는 것뿐”이라고 했다. 뇌혈관 전문의들도 정부의 2000명 증원과 전공의 처벌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중증·응급 환자를 책임지는 의사로서 병원을 지키겠다는 뜻이다.

권 회장은 “지난주엔 24주 산모가 ‘동정맥 기형’이 터지는 뇌출혈로 응급 이송돼 왔는데, 전공의가 없어 급히 다른 교수를 불러 수술을 해야 했다”며 “실제 수술·진료 현장에서 전공의들 빈자리가 너무 크다”고 했다. 뇌 수술은 교수가 혼자서 할 수 없다고 한다. 전공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응급 상황이 생길 때마다 다른 교수들을 급히 데려와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교수들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뇌 수술 건수도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권 회장은 “(의사라면) 환자들이 죽어 나가는 걸 보고 있을 수는 없으니 누군가 자리를 비우면 누군가는 대신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라며 “과거 의사 파업 때도 그랬다”고 했다. “뇌혈관 질환을 다루는 우리는 늘 그렇게 환자 곁을 지켜왔다”는 것이다.

그는 교수들이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간 정말 환자가 죽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환자와 국민을 생각하고 더 큰 피해를 막으려면 정부와 의료계가 한발씩 물러서는 것이 맞는다”고 했다. 정부가 먼저 손을 내밀어줘야 사태 해결이 가능하다는 취지다. 특히 그는 “우리나라 외과계가 중증 환자 치료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가 낮은데도 버텨오고, 세계 최고 수준의 뇌졸중 치료 역량을 갖추게 된 데는 전공의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며 “정부가 전공의 이탈을 사실상 방치하고 법적 처벌을 앞세워 밀어붙이는 건 무책임하다”고 했다.

권 회장은 또 “일각에서 의사 집단 전체를 묶어 악마화하거나 ‘좋은 의사’ ‘나쁜 의사’로 갈라치기 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전공의들도, 병원에 남은 의사들도 우리나라 의료를 걱정하는 마음은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환자와 의사 간 신뢰가 이렇게 무너져선 안 된다”고 했다. 실제 이번 사태 이후 대학병원의 일부 교수들은 ‘의사 악마화’를 우려하며 공개 사직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주향 아주대병원 교수는 지난 8일 사직 의사를 공개하며 “의사 직역을 악마화하는 여론을 보면 진료실에 들어오는 내 환자도 그들과 같은 생각일 것만 같아 괴롭다”고 했다. 권 회장은 “국민들도 그냥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로만 보시지 말고, 전공의들이 왜 저렇게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지 한 번만 더 생각해주시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