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창원한마음병원 3층 수술실에서 주종우 간담췌간이식외과 교수가 암 환자 박모씨의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이 병원은 의료 파행 이후 서울 대형 병원에서 보낸 수술 환자 등 입원·외래 환자가 10% 늘었다. /김동환 기자

18일 오전 9시 30분 경남 창원시 창원한마음병원 3층 수술실. 주종우 간담췌간이식외과 교수가 암 환자 박모(71)씨의 수술을 집도 중이었다. 담즙과 췌장액이 십이지장으로 내려가는 길의 말단 부위에 생긴 종양을 떼어냈다. 의료진 8명이 참여한 이 수술은 5시간 동안 진행됐다. 수술실에서 나온 주 교수가 “잘 끝났다”고 말하자 환자 가족들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수술을 받은 박씨는 창원에 살지만 서울의 한 대형 병원에서 수술을 받기 위해 18일 입원 날짜를 받아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전공의(인턴·레지던트)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 파행 사태를 보면서 자칫 자신의 수술도 밀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에 그는 암 진단을 처음 받았던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다. 박씨의 딸은 “워낙 큰 수술이다 보니 서울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을 기다릴까 고민도 많이 했다”며 “그런데 수술이 잘 끝났다고 하니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전공의 파업으로 서울 ‘빅5′ 대형 병원에서 수술 연기·취소가 이어지면서 지방 환자들이 집 근처 2차 병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지역 병원 중에는 규모나 실력에서 서울 대형 병원에 밀리지 않는 곳들이 적지 않은데도, 그동안 ‘아프면 무조건 서울’로 향하는 환자들이 많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번 의료 파행으로 ‘지역 2차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8일 오전 경남 창원시 의창구 창원한마음병원에서 주종우 교수(외과)가 수술을 받기 위해 수도권에서 온 환자를 회진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창원한마음병원 역시 전공의 파업 이후 전보다 입원·수술 환자가 10% 정도 늘었다고 한다. 창원한마음병원만해도 전문의 104명, 간호사 900여 명이 근무한다. 하루에 3000명 넘는 입원·외래 환자를 보는 경남 지역의 대표적 2차 종합병원이다. 췌장·담도 질환 명의 김명환 교수와 간이식술을 500차례 이상 집도한 주종우 교수 등 실력 있는 의료진이 포진하고 있다. 최근 한 달 사이 서울 ‘빅5 병원에서 췌장암·팽대부암 환자부터 간이식술이 필요한 환자 등 약 10명이 이곳으로 옮겼다.

지난 13일 이곳에서 간이식술을 받은 유충실(60)씨도 서울 한 대형 병원에서 간 이식 수술 날짜를 잡아놨던 경우다. 유씨 보호자 김양숙(55)씨는 “남편이 간경화 말기”라며 “배에 복수가 차고 합병증도 심해 파업이 끝나는 걸 기다릴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명환 창원한마음병원장은 “지역의 2차 병원들에 지금 기회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프면 서울에 있는 병원을 가야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깨트릴 기회라는 것이다. 김 병원장은 “지방 사람들이 아프면 무조건 서울로 병원을 갔던 이유는 지역 의료 인프라가 좋지 않았던 과거 경험 때문”이라며 “이번 기회에 좋은 치료 결과를 보여주면 환자들에게 지역 의료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충식 한마음국제의료재단 의장은 “이번 기회에 서울 ‘빅5′는 난치병 등 중증 환자와 연구, 교육에 집중하고 그 외 환자들은 지역 병원에서 책임지는 쪽으로 의료 체계가 정상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