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정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 /이미정 교수 제공

전국 대부분 의대 교수들은 25일부터 집단 사직서를 제출하겠다고 지난주 예고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충남 천안에서 소아암 환자들을 진료하고 있는 바이털(생명과 직결된 필수 의료) 의사가 의료 전문 매체에 “사직서에 반대한다”는 기고문을 써 의료계 안팎에서 화제다. 지금까지 사직서 제출에 공개적으로 반대 입장을 밝힌 교수는 없었다.

기고문을 보낸 이미정 단국대병원 소아청소년과장은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의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면 그나마 의사들에게 눈과 귀를 열었던 국민도 다시 눈과 귀를 닫을 것”이라며 “환자는 물론 환자들을 맡기고 간 전공의를 위해서도 교수들은 사직서를 낼 때가 아니라 지금처럼 계속 묵묵히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20일 단국대 의대 교수 회의에서 “항암 치료 중인 소아암 환자들이 있다”며 집단 사직서 제출에 반대했다. 이후 동료 교수가 이 교수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형식으로 “전공의들이 다치는데, 교수들이 하던 일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한 의료 전문 매체에 기고하자, 답장 형식으로 직접 반박 글을 보낸 것이다. 이 교수는 본지 인터뷰에서 “국민 생명권 유지를 위한 의료 서비스는 어떤 경우에도 중단돼선 안 된다”며 “응급 의료와 암 수술 같은 필수 의료는 중단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어떤 집단행동도 정당성을 얻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사직서 제출을 고민하는 동료 교수들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다만 “전공의들도 남은 의료진에게 중환자·응급 환자들을 맡기고 간 것”이라며 “사직서 수리 전엔 교수들이 병원을 떠나는 게 아니지만, 많은 환자는 사직서 얘기만으로도 불안해하고 고통을 겪는다”고 했다.

소아암 환자는 매년 전국에서 1200~1500명 새로 발생한다. 교수들이 병원을 지키고 있는 지금까지는 진료·수술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교수들이 25일부터 진료 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줄이고 사직서까지 낸다는 소식에 환자 가족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급성 림프종 환자인 9세 아들의 치료를 위해 매주 충남 당진 집과 단국대병원을 오가고 있다는 A씨는 “교수님들마저 병원을 떠나면 지금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소아암 환자 가족들은 절망에 빠질 것”이라며 “교수님들이 사직서를 낼 일이 없도록 하루빨리 정부와 대화가 잘되면 좋겠다”고 했다. 서울 대학병원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얻어 소아암에 걸린 딸을 돌보고 있다는 B씨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데, 혹시라도 교수님들이 병원을 그만두고 아이가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까봐 불안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전공의 이탈 후 환자들은 병원에 남은 의료진만 바라보고 있는데,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고 했다. 아래는 이 교수와의 일문일답.

−전공의들이 이탈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최근엔 비뇨기과 수술이 급한 소아암 환자가 있었는데, 수술 자체가 가능한 병원이 전국에 네 곳밖에 없다. 환자를 보낼 병원을 못 찾다가 겨우 서울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교수들이 병원을 지키고 있는 지금까진 진료·수술에 큰 차질이 없었지만, 앞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공개적으로 교수 사직에 반대한다고 밝히기 쉽지 않았을 텐데.

“같은 생각을 가진 교수도 더러 있지만, 많은 교수들이 ‘사직서를 내야 한다’고 하는 상황에서 반대 의견을 밝히긴 어렵다. 우리 교수 회의에서 ‘나는 현재 진료 중인 소아암 환자들 때문에 사직할 수 없다’고 한 것이고, 이후 나를 언급한 동료 교수의 기고가 나왔기에 ‘이번 기회에 내 생각을 제대로 밝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정(오른쪽) 교수는 22일 본지 인터뷰에서 “그래도 환자에게 ‘마지막 보루’인 교수들은 끝까지 의료 현장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사진은 이 교수가 2022년 어린이 모델과 함께 단국대병원 암센터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모습. /이미정 교수 제공

−사직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의사들의 행동이 어떻게 평가받을지 그 ‘키’는 국민이 쥐고 있다. 환자들은 병원에 남은 의료진만 바라보고 있는데, 교수들이 사직서를 낸다면 국민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느냐. 정부가 ‘면허정지’ ‘사법처리’를 내세우는 것을 우리가 전공의에 대한 협박으로 보듯이, 교수들의 사직서 또한 일부 국민에겐 그런 협박으로 비칠 수 있다.”

−실제 교수들의 대량 사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나.

“각자 지켜야 할 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그러진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사직서만으로도 많은 환자들은 불안할 수 있고, 국민은 실망할 것이다. 전공의들도 더 비난받게 된다. 만약 실제로 많은 교수가 떠나게 되면 병원은 무의촌(無醫村)이 돼 정말 ‘의료 대란’이 벌어질 것이다. 그건 누구도 원하는 상황이 아니다.”

−정부의 ‘의대 2000명 증원’은 문제가 없다고 보는지.

“의사가 노동자로서 ‘수가 인상’과 ‘안정적 진료 환경’을 원한다고 했는데, 정부가 갑자기 ‘의대 2000명 증원’으로 답했다. 2000명은 교육 현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숫자다. 단국대는 40명도 겨우 가르치고 있는데, 당장 내년부터 120명이 된다. 대형 강의실도 없고, 해부학 실습은 물론 수련 병원 임상 실습에도 큰 차질이 생길 것이다. 내년 입학생들을 임상 현장에서 직접 가르쳐야 할 때 스스로 ‘내가 제대로 가르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면 그때는 나도 책임지고 사직할 것이다.”

−정부의 ‘필수 의료 패키지’는 어떻게 평가하나.

“너무 부족하거나 구체적 내용이 없다. ‘고속도로 뚫겠다’고 하는데 무슨 돈으로, 어디에 길을 낼지는 안 나와 있다. 2000명 증원 이후에 ‘힘든’ 필수 의료는 더 외면받을 수도 있다.”

−사태 해결을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느냐.

“교수들은 환자는 물론 환자들을 맡기고 간 전공의를 위해서라도 지금처럼 계속 묵묵히 환자들을 돌봐야 한다. 그러면서 국민 마음을 얻고, 정부에 대화를 촉구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정부다. 정부가 전공의 처벌 절차부터 일단 중단시키고,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허심탄회하게 의사와 각계 전문가들의 목소리를 함께 듣는 자리를 마련해주면 좋겠다. 진료 현장에 남아 어떻게든 ‘의료 대란’을 막기 위해 애쓰고 있는 의료진의 목소리에 대통령이 제발 지금이라도 ‘선입견’ 없이 귀를 더 크게 열어달라.”